2011년은 토끼해다. 1975년생 토끼띠인 이창호에게 신묘년 새해를 맞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이창호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연초 농심배서 막판 3연승으로 한국에 또 다시 우승컵을 안겼고 국수 타이틀을 따내는 등 출발은 비교적 괜찮았지만 하반기 들어 각종 국내외 기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타이틀 추가에 실패한 것은 물론 연간 성적이 41승 33패(승률 55%)로 1986년 입단 이후 가장 나빴다. 비씨카드배 본선1회전에서 아마추어에게 패하는 굴욕을 당하더니 GS칼텍스배서는 예선1회전에서 탈락, 바둑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연간 승률이 50%대로 떨어진 건 프로 입문 25년만에 처음이다. 이에 따라 랭킹도 연초 1위에서 계속 하락을 거듭해 연말에는 7위까지 밀려났다. 2011년 1월 랭킹에서 7위를 지켜 겨우 하락세가 멈췄지만 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각종 세계대회 우승은커녕 아예 출전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한국기원 규정에 따르면 랭킹 3위까지만 자동적으로 세계대회 출전권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모두 별도의 선발전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4월 열리는 후지쯔배의 경우 한국에 여섯 장의 본선시드가 배정됐는데 랭킹 1~3위인 이세돌 박정환 최철한에게만 시드가 주어지고 4위부터 15위까지 12명이 남은 석 장의 출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랭킹 7위인 이창호 역시 17~19일에 열리는 선발전에서 3위 안에 들어야 대회에 나갈 수 있다. 그동안 거의 모든 세계대회에 빠짐없이 출전해 한국바둑의 든든한 대들보 역할을 해온 이창호로서는 아주 낯선 경험이다.
새해를 맞아 이창호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국수 타이틀 방어다. 이창호는 12일부터 최철한과 제54기 국수전 도전 5번기를 벌이게 된다. 최철한은 5일 끝난 국수전 도전자결정전에서 김지석을 2대1로 꺾고 도전권을 따냈다.
이창호와 최철한이 국수전 도전기서 만나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최철한은 7년 전 제47기 때 도전자로 나서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창호를 3대2로 꺾고 생애 첫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이듬해 열린 리턴매치에서도 3대0으로 승리해 '이창호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이창호가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국수전 도전기에서는 최철한에 1대2로 뒤진 셈이다. 통산 상대전적에서도 26승 24패(이창호 기준)로 막상막하인데다 이창호가 지난해 컨디션 난조로 고생한 데 반해 최철한은 최근 랭킹이 다시 오르고 천원전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만만치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국수는 이창호에게 남은 마지막 타이틀이다. 공식적으로는 KBS바둑왕과 국수 2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작년 10월 바둑왕전 본선 승자조에서 박정환에게 패해 패자조로 밀려났고 12월에 열린 패자조에서 다시 이세돌에게 져서 완전히 탈락했다. 따라서 만일 이번에 국수마저 잃는다면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이래 22년만에 처음 무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 작년에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결혼준비 등으로 신변이 복잡했다. 머리에 열이 오르는 증세 때문에 바둑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어이 없는 착각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국 중 찬물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드나드는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한 치료를 통해 건강이 크게 좋아졌고 결혼으로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 올해는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이창호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양재호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창호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작년 하반기와 같은 부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하며 "결혼을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게 크고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올해는 틀림없이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창호는 지난해 말 바둑기자들을 서울 서초구 일원동 신혼집으로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근 대국수가 줄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졌다. 결혼 후 아내가 자상히 챙겨주고 항상 편안하게 해줘서 내년에는 분명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바둑팬들도 물론 한국바둑의 간판스타 이창호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과연 토끼해를 맞아 이창호가 토끼처럼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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