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강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의 일이었다. '동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동강 정무룡씨 댁에서 있었다. 경향각지에서 40여명이 모여 동강을 따라 걸어보는 행사였다. 동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에게 한 선배가 말했다. 동강 가의 돌은 모두 보석이라고.
그 말에 혹해 무릉도원 같은 겨울 동강을 찾아 나섰는데 정무룡씨 집으로 가는 길이 끊어져 버렸다. 강물이 얼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친구의 사륜구동차량으로 수심이 깊지 않는 곳을 택해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친구의 차는 나머지 사람들을 실으러 돌아오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면서 추워지는데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맨발로 강을 건너자는 것이었다. 무모한 일이었지만 선택이 없었다. 신발 속에 양말을 넣고 바지로 둘둘 말아 머리에 이고 팬티차림으로 폭이 10m쯤 된 겨울 동강을 건넜다. 극심한 통증으로 반을 건너기도 전에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죽는 것이 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강을 건넜을 때 한기가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열이 치솟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의 육체가 혹독한 고통을 겪을 때 그 대가로 명징한 정신이 찾아온다는 것을. 요즘도 나는 가끔 털신에 맨발로 다닐 때가 있다. 두꺼운 양말, 두꺼운 신발을 신은 사람들은 모르는 그 기찬 맨발의 정신을 맛보기 위해.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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