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빠르게 번지면서 소와 돼지 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 매몰 처리됐다. 방역 차원에서는 더 큰 피해를 막으려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지만, 그 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추모비라도 세워 넋을 달래고 가축 전염병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울 만하다. 소독과 예찰 활동, 질병 발생 가능성의 사전 예측과 사후의 엄밀한 평가 등 효율적 예방체계를 구축해 가축 전염병 만연을 차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는 전염병에 걸린 가축의 처리 방안으로 소각이나 매몰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전적으로 매몰에 의존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때문에 새로 생긴 가축 매몰지는 전국 623 곳에 이른다. 여기에 이번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매몰지는 이미 전국적으로 1,300곳 가까이나 된다.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살처분 가축이 급증하고 방역 활동과 매몰 처분을 함께 하느라 일손이 크게 달리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처리가 완벽하지 못해 일부 매몰 현장에서 침출수가 새어 나오거나 지하수원으로 스며드는 등 2차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축을 급히 매몰하느라 침출수 저수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가축 피가 넘쳐 인근 도로로 흘러나오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지하수를 사용하는 매몰지 인근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수돗물을 공급하거나 새로운 지하수를 암반층에 개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축 매몰지의 2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몰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적어도 3년 동안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지하수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사전ㆍ사후 관리가 요구된다.
선진국도 과거에는 신속한 방역을 앞세워 전염병에 걸린 가축의 현지 매몰을 우선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중 위생과 환경 보호를 위해 다른 처분 방법을 택하는 추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공중 보건 및 환경을 보호하고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의사결정 제도를 수립해 놓았으며, 처분 방법의 우선순위를 열처리 정제, 매립지 처분, 현지 퇴비화, 현지 매몰 순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는 소각, 열처리 정제 후 소각, 퇴비화나 바이오 가스 자원으로의 활용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열처리 정제시설의 처리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것도 예방적 살처분에 한해서만 정부가 지정하는 장소에 전염병에 걸려 살처분된 가축을 묻을 수 있도록 엄격히 매몰을 제한하고 있다.
인적ㆍ 물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완벽한 가축 전염병 통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육류 소비 증가에 따라 가축 사육 밀도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열처리 정제, 현장 소각, 약품 등을 이용한 가축 매몰지의 조기 안정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관련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올부터 가축 사체의 화학약품에 의한 처리와 자원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그 연구 결과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재난 상황에 이른 구제역 방역만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임을 알지만, 가축 매몰에 따른 지하수 2차 오염 가능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은 어렵더라도 가축 매몰지 환경관리 지침을 좇아 환경 오염을 막을 수 있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권오상 국립환경과학원 상하수도연구과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