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드릴로 지음ㆍ유정완 옮김
창비 발행ㆍ370쪽ㆍ1만3,000원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74)는 동년배 작가인 토머스 핀천과 더불어 미국 포스트모던소설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소비자본주의, 미디어와 이미지, 문학과 예술의 위상, 테러 등 현대 미국 사회를 다각도로 탐구해 온 지성파 작가인 그가 1991년 발표한 장편소설 <마오 ⅱ> 는 이듬해 펜/포크너 상을 받으며 그의 문학적 명성을 굳힌 작품이다. 마오>
89년의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레바논 베이루트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해 이란의 종교ㆍ정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폄훼했다며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사망했고, 레바논에서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에서 비롯된 내전이 절정을 맞아 테러가 난무했다. 이런 격동기를 배경으로 철저히 은둔의 삶을 살던 유명 소설가 빌 그레이가 베이루트에 인질로 억류된 스위스 시인을 구출하려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과정이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이 소설은 그러나 서사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고, 그 의미 또한 상징적, 은유적이다. 주인공 빌을 비롯, 그에게 초상사진 촬영을 의뢰받는 사진작가 브리타, 치밀한 전략으로 빌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비서 스콧, 런던에서 베이루트 테러 단체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죠지 등은 저마다 현대 문명사회의 문제적 지점들을 대변한다.
작가 드릴로는 특히 세계적 규모의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문학의 무기력과 왜소함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데 공을 들인다. 빌의 비극적 죽음은 곧 문학의 죽음으로 읽힌다. 뉴욕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20년 넘게 세 번째 소설의 문구를 다듬는 자폐적 삶을 살던 빌은 브리타와의 만남에서 자극을 받고 내처 런던으로 건너가 납치된 시인의 구명에 나선다. 그러나 그를 덮친 것은 기자회견장에서의 폭탄 테러와 불의의 교통사고. 중상을 입은 그는 시인 대신 인질이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레바논행 배를 탔다가 그곳에서 죽고, 종내 신분을 증명할 소지품마저 도난당한다.
그러나 스콧은 빌의 실종을 되레 그의 상품가치를 높일 호기로 여긴다. 상업주의에 포섭돼 독자적 가치를 잃어버린 문학에 대한 드릴로의 강도 높은 냉소로 읽힌다. 나아가 그는 호메이니의 장례 인파, 양키스타디움의 통일교 합동결혼식, 마오쩌둥(毛澤東)의 5,000만 홍위병 등을 강렬한 스냅사진처럼 작품 곳곳에 삽입, 테러리즘 시대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종교적ㆍ정치적 집단주의를 인상적으로 폭로한다. "미래는 군중들의 것이다"(30쪽)라는 문장이 묵시록의 한 대목처럼 읽힌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방점을 찍을 대목은 무력할지언정 문학의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하려는 빌의 고투일 듯싶다. "내가 왜 소설의 가치를 믿는지 아시오? 그건 소설이 민주적 함성이기 때문이지. … 이름없는 막노동꾼이나 꿈도 하나 키우지 못한 무법자라도 앉아서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가 있고 운이 좋으면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거지."(243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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