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의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5선 실패는 한국 축구로서는 크나큰 타격이다.
한국 축구는 1994년 정 명예회장이 FIFA 부회장에 당선된 이후 국제 무대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공동 개최권을 얻어낸 것은 정 명예회장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위상을 높인 데는 정 명예회장의 외교력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정 명예회장의 낙선으로 졸지에 '축구 외교 변방'으로 전락하게 됐다. 정 명예회장의 낙선은 한국 축구가 16년간 유지해온 국제 축구 최고위층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단일 창구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국제 축구를 쥐락펴락하는 FIFA 집행위원회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유일한 접점이 정 명예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재임 기간 중 한 칼럼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FIFA 최고위층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정이다. 정 명예회장은 "홈 경기와 원정 경기를 잇달아 치르는 불합리한 일정이 나와 홈에서 2경기를 치르고 원정을 떠나도록 일정을 바꿔달라고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시 하는 대회가 올림픽이다. 올림픽에서 '와일드 카드(연령 제한 초과 선수)' 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데도 정 명예회장의 목소리가 크게 작용했다. 2009년 3월 FIFA 집행위원회에서 올림픽 출전 제한 연령을 21세로 낮추고 '와일드 카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불거졌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FIFA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시절 이를 저지하고 '23세 이하+와일드 카드 3명'의 현행 제도를 유지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했다. 정 명예회장의 FIFA 부회장 5선 실패로 한국 축구는 국제 무대에서 '방파제'를 잃어버린 셈이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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