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인의 사찰 땅 밟기 얘기를 들었는데 동료 기독교인으로서 용서를 빈다. 이는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종교든 종교적 진리를 배타적이고 우월적으로 주장할 경우 폭력과 연결될 수 있다. ”(폴 니터 교수)
“한국인의 문자와 책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이 성경무오설이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이 올가미에서 극보수 기독교인들이 벗어나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김경재 목사)
“기독교와 불교에는 모두 죽어야 산다는 사즉생(死卽生)의 정신이 깔려 있고 자유를 바탕으로 사랑 헌신 자비를 강조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같다. 이제 창조적으로 서로 만나야 한다.”(길희성 교수)
5일 저녁 서울 양천구 조계종 국제선센터 내 금차선원(今此禪院)에서 조계종 총무원 주최로 스님 목사 신학자 종교학자 8명이 모여 종교 간 대화와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제각각 믿는 종교는 다르지만 따듯한 시선으로 타 종교를 포용하고 존경하면서도 때로는 상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2시간 반 가량의 열띤 대화였다. 선원 밖 복도까지 빼곡히 메운 400여명의 청중도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며 밤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 자리는 종교 간 대화의 세계적 권위자인 폴 니터(71)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 석좌교수의 방한을 계기로 마련됐다. 니터 교수는 지난달 31일 대구 동화사, 부산 해운정사 등에서 진제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과 만난 데 이어 마지막 일정으로 이날 대화에 참여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종교 간 화해와 사회적 실천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쳐 온 이들이다. 기독교 모태신앙인이면서 불교학을 전공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한신대에서 35년간 조직신학을 가르친 진보신학자 김경재 목사,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장인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교수, 정현경 유니언신학대 종신교수, 간화선 대중화의 선두 주자인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영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을 지낸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이 참여했고 금차선원장 효담 스님이 사회를 맡았다.
첫 화제는 한국 기독교인의 공격적 선교 행위였다. 니터 교수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등 여러 폭력의 역사도 기독교만이 참된 믿음이라는 데서 촉발됐다”며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김경재 목사는 배타성의 원인으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성경무오설과 함께 성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도 들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마치 시장에서 경쟁 상대를 이기려는 듯 타 종교를 폄하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어 “불교에도 책임이 1%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교는 호국불교라는 명분 아래 권력층을 위하면서 민중에게는 제대로 정법을 전파하지 못해 불교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결국 불교의 업보인 셈이다”고 꼬집었다. 미산 스님은 이에 대해 “100% 불자들 책임이다”며 “100%라고 인정해 버리면 문제 해결이 쉬울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정배 교수는 “기독교가 서구 문명과 함께 들어와 우리 전통문화를 타자화 미신화했고,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를 타자화했다”며 “아울러 기독교인들이 정권을 잡아 이를 과시하는 무례함도 함께 짚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니터 교수는 “한국 진보 기독교인들이 보수 기독교인들과 우선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예수와 부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의견도 나눴다. 라는 책으로 쓰기도한 길희성 교수는 “부처와 예수는 천하의 자유인이었다”며 “불교의 공(空)과 기독교의 사랑은 둘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정배 교수는 “다석 유영모 선생에겐 견성 고행 성불이나 하느님 예수 성령이 아무 무리 없이 서로 교차했다”며 “그분의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도마에 올랐다. 니터 교수는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한 뒤에야 사회 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냐”며 “불교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개인 변화만 강조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산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란 말처럼 불교는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동시에 추구하는데 상과 하라는 말에서 보듯 깨달음만 우선시한 측면도 있다”며 “이 말을 우구보리 좌화중생이라고 해서 똑같이 중시하자”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가 모두 관심을 가진 것은 고통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에 함께 응답하고 실패와 성공도 함께 경험하면서 형제자매가 되자”며 이날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글ㆍ사진=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