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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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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다

입력
2011.01.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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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로서 중국을 자주 여행하는 외우(畏友) S교수의 칼럼을 읽으며 마음이 아파졌다. 8년 동안 대통령을 지내고 퇴임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지지도가 87%이고, 중국의 모택동은 사망 후 30년 넘도록 국민의 존경을 받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 않느냐는 한탄 어린 내용이었다.

그는 모택동이 그처럼 존경 받는 이유의 하나는 인문 정신에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결론을 내렸다. 풍찬노숙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노혁명가 모택동, 중국 고전을 두루 섭렵하여 전통문화 지식이 해박하고, 투쟁적 전략에 뛰어났으면서도 여리고 섬약한 서정시를 즉석에서 읊어대는 탁월한 인문 정신을 겸비한 혁명가였기에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부연 하였다.

국민 존경받는 지도자 없어

정말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광복 이후 정치사만 보더라도 우리는 우선 그런 면에서 넉넉한 전략과 고전과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산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자세히 설명했다.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가 되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책을 제대로 읽은 지도자가 된단 말인가. 다산은 "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을 공부하여 밑바탕을 다진 뒤에 옛날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한 글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라고 말한 뒤 결론으로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네 지도자 중에서 참다운 독서를 한 지도자가 몇 분이나 있었고, 만백성에게 혜택을 끼치고 만물이 제대로 자라게 하려는 마음으로 권력에 도전하여 권력자가 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경학은 오늘의 학문으로는 철학이다. 정치철학이요 사회철학이며 경세철학이 바로 사서육경의 연구인 경학이었다.

우리 근대사에 철학으로 밑바탕을 다진 지도자가 과연 있었는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겠다는 정치철학을 가진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우리 국민의 불행이었다. 동서고금의 고전과 역사책을 섭렵하여 치란흥망(治亂興亡)의 인류사에 나름대로의 식견을 지닌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지도자들의 행동반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인권을 귀중하게 여기는 철학이 없고 쓴 소리하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유혹에 휘둘렸으며, 공정한 인사나 인재 발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측근이라면 덕성이나 능력이 없어도 중용하는, 그래서 실패한 지도자만 많았다.

확고한 치세 철학 그리워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지도자나 목민관이 존경 받을 수 있겠는가.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백성의 뜻을 존중하는 정치철학은 없이 군림과 우월감만 누리려는 지도자는 자리의 크기와 관계없이 결코 큰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역사가 잘 말해준다.

독서군자는 아니라면 독서군자라도 등용하여 만민과 만물에게 혜택을 주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도 없는 정치지도자라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다. 해가 바뀌고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고전 역사 전통에 해박하고 확고한 치세 철학을 가진 지도자가 더욱 그리워진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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