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매년 이맘때면 빠짐이 없었던 정부의 대학 등록금 관련 쇼가 또 등장했다. 대충 이런 순서다. 물가(物價)와 직ㆍ간접적으로 선이 닿아 있는 정부 부처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갖는다(올해는 엊그제 민생안정차관회의란 이름으로 열렸다). 전기료 열차요금 도로통행료 버스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할 방안이 논의된 다음 등록금 업무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나선다. 교육부가 내미는 카드는 늘 변함이 없다. '동결(凍結)'이다. 올해 회의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대학등록금이 연내 물가불안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어요. 국립대는 인상하지 않도록 하고, 사립대 역시 올리지 않거나 올리더라도 인상폭을 최소화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총대를 멘 모양새다(역대 교육장관이 사실 모두 그랬다). 6일 전문대 총장들을 먼저 만났다. 정부 회의때 나온 내용을 총장들 앞에서 복창(復唱)했다. "등록금이 물가 인상의 기폭제가 될 수 있어 동결 또는 최소 수준의 인상을 해줬으면 합니다." 을(乙)의 위치인 전문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교육 수장의 말을 어겼다간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탓이다. 그래선지 회의 직후 "올해 등록금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원칙적 합의를 했다"는 입장을 순진하게 내놓기도 했다.
전문대 총장들의 처지를 모르는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건 지나쳤다는 판단이다. '원칙적 합의'라니. 전문대학들이 일종의 등록금 담합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 아닌가. 등록금이 자율화해 있다는 사실은 대학 관계자라면 다 안다. 정부가 콩나와라 팥나와라 간섭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어느때부턴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굳어져 있다.
교육 장관은 7일엔 4년제 주요 대학 총장들과 또 등록금 간담회를 갖는다고 한다. 전문대 총장들한테 했던 얘기를 녹음기처럼 틀어댈 것이다.
이 장관이 정부 방침을 총장들에게 전달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전직 장관들도 했던 일이니 새삼스러울것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등록금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답답하다. 선진국 어느 나라 정부가 대학한테 등록금을 올리지 말아달라고 하는가. 그것도 반(半) 협박식의 구태를 재연하면서. 등록금을 올리지 않는 대학엔 재정 인센티브를 더 주겠다는 치졸한 발상은 그만뒀으면 한다.
정부가 처한 상황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등록금이 갖는 파괴력 때문일 터이다. 등록금 인상은 정권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명제다. 대학들이 학비를 올리더라도 물가인상률은 넘어서지 않을 수준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선 연간 수십만원을 더 내야하는 부분이 거슬릴 것이다. "정부는 대체 뭘 하느냐"는 비난이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때 표로 연결되는 것은 정말로 상상하기 싫을 것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해법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정부가 대학의 결정을 100% 존중하는 게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올리든, 올리지 않든, 교육부가 간여해선 안 된다. 지켜본 뒤 잘못된 부분만 개선토록 하면 된다. 누가 보더라도 과도한 인상이나 부당한 인상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 자율화 시대라고 하면서 사사건건 정부가 대학 업무(특히 사립대)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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