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정쟁 탓에 국회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법령 조항을 제때 개정하지 않아 입법 공백을 초래하는 등 직무유기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조항 20개가 미개정 상태에 있으며, 이 가운데 7개 조항이 이미 입법 시한이 경과됐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령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헌재가 즉시 위헌 판결을 내릴 경우 법적 공백이 발생하므로 법 개정 시한을 두는 제도. 따라서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법 조항이 입법 시한을 경과하면 위법성이 있는 사안에 대한 처벌 규정이 사라져 법적 공백이 발생하므로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민생과 밀접한 법 조항이 입법 공백 상태가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부득이한 경우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2009년 9월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지만 지난해 6월 개정 시한을 넘겼다. 결국 이 법 조항의 효력이 상실돼, 언제 어디서 옥외집회를 해도 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야간 옥외집회로 인해 인근 지역 주민이나 상인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더라도 이를 집시법으로 제재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 제19조,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7조 등 위헌 결정이 나 효력이 상실됐는데도 후속 입법조치가 없어 정비되지 않은 법령 조항도 27개에 이른다. 법인의 약국 개업을 금지한 약사법, 국외 항해 선원의 선거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공직선거법, 상소 취하 때 미결 구금일수를 형기에 산입하지 못하게 한 형사소송법 등 5개 조항은 몇년째 법적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처럼 헌재가 위헌, 헌법불합치 등 결정을 내린 법령 조항 중 미개정 법령은 모두 52개에 달한다.
이들 중 올해 연말까지가 개정 시한인 법률 조항은 6개. 전역 이전에 질병 등 증상이 확정된 퇴직군인에게만 연금을 지급토록 한 군인연금법(23조 1항)을 비롯해 무죄 확정 후 1년 이내에 형사보상을 청구토록 한 형사보상법(7조),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를 정지하게 한 지방자치법(11조 1항) 등이다.
헌법학자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헌재가 헌법불합치를 결정할 때 해당 법령의 입법 시한을 정하는 것은 입법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국민적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국회가 법 개정을 소홀히 해 국민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때는 그에 상응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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