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민생안정차관회의.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주문한 만큼 긴장감이 팽배했다. 회의를 주재한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관계부처 당국자들에게 강한 어조로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모두 다 내놓으라"고 주문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하지만 각 부처는 '별로 내놓을 게 없다'며 대략 난감한 표정들.
정부의 물가대책이 깊은 덫에 걸렸다. 연초부터 곳곳에서 물가가 꿈틀대는 상황에서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물가불안이 전방위로 확산될 수 있는 상황.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사실은 재탕 삼탕 정책 뿐.
그나마도 억누르고 쥐어짜는 인위적 가격통제가 대부분이다. 의지가 강할수록 동원되는 행정력만 확대되고, 또 정부가 지원하는 돈(관세ㆍ세제혜택)만 늘어날 뿐이다.'고성장(5%)-저물가(3%)'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보니,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은 제 때 손대지 못한 채 통제와 단속만 강화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 결과 등을 토대로 11일 설 민생대책과 13일 물가안정대책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 하지만 참신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물가대책들은 껍데기만 달리한 붕어빵 수준. 가장 최근인 작년 12월 초 나왔던 물가대책도 ▦농업관측 강화 및 계약재배 강화 ▦가격정보 공개 확대 ▦관세 인하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 ▦대학등록금 인상 억제 등 해마다 되풀이되는 내용들이었다. 정부는 이번에도 등록금 및 공공요금인상 억제 쪽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인데 이는 1년, 2년 전에도 빠지지 않았던 단골메뉴들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에 내놓을 대책도 12월 초 대책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책은 한계가 명백하다. 당장은 물가잡기에 좀 효과를 볼 지 몰라도, 나중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가절감, 유통구조 개선 등 근본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물가와의 전쟁'에 나서봤자, 요금인상은 결국 뒤로 연기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관리 가능한 가격만 통제를 하는 경우 경제 전체의 가격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한파 폭설 같은 기상요인 외에 근본적으로는 ▦국제 유가불안 ▦과잉유동성 ▦중국발 인플레압력(차이나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때문에 단기ㆍ미시적 대응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폭 넓은 정책조합을 고민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작년 경기 회복기에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늦춘 것이 지금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인위적 가격 통제 방식으로 물가를 낮추려고 해본들 큰 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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