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막한 선방서 하루 10시간씩 참선…山寺는 고독마저 얼어붙었다
침이 목청을 넘어가는, ‘꼴깍’ 하는 소리마저도 조심스러웠다. 웃고 울고 화내거나 떠드는 세상의 소리들이 절멸된 산사의 선방(禪房). 익히 들은 그 표현들이 과장은 아니었다. 재가 수행자들의 선방이건만 고요는 바람 소리조차 삼켜 버릴 기세였다. 수행자 틈에 낀 기자는 그 묵언의 무게감에서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릴 듯 했다. 한적해 보이는 산사지만 선방 안은 어떤 결기와 결기가 맞서는, 보이지 않는 전장 같았다.
한 해가 가고 오는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3일 동안 기자가 찾은 곳은 경북 문경시 사불산 자락의 대승사(大乘寺). 성철ㆍ청담ㆍ월산 스님 등 유명 선지식들이 거쳐갔고 지금도 엄격한 수행처로 소문난 이곳에서 11월부터 스님 25명, 재가자 9명이 동안거(冬安居) 정진 중이다. 스님들이야 세간의 문턱을 넘은 이라 치더라도 재가자들은 무슨 사연을 안고 이곳으로 왔을까.
원력 없인 졸음과 고통만
전국 곳곳에 대설주의보와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던 30일 오후. 서울에서 4시간여를 달려 해발 600m 산기슭에 자리잡은 대승사에 도착하자 진돗개 백구가 뛰어와 꼬리를 친다. 한파에다 눈발까지 거세진 까닭에 외부인의 발길이 뚝 끊겨 산사는 고독 속에 얼어붙은 듯했다. 녀석도 외로웠던가, 낯선 객을 봐도 짖지도 않고 반가운 체한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오후 수행 시간. 선방에서 잠시 나온 주지 철산 스님이 손수 만든 경옥고를 한 사발 달여 주신다. 철산 스님은 3일간의 선 체험에 나선 기자에게 “산모들이 그 큰 고통을 참고 아이를 낳는 것도 원력(願力)이 있기 때문”이라며 “깨달음을 얻겠다는 원력이 간절히 서야 힘든 수행도 이겨 내는 것”이라고 원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님의 이 말은 불과 몇 시간 뒤에 몸으로 느끼게 됐다.
스님이 주신 화두는 ‘이 뭣꼬’였다. “저 눈발이 흩날리듯 생각이 이리저리 변하고, 몸뚱이가 움직이는데 그 몸뚱이를 움직이게 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한번 참구해 보라.”
화두는 논리적으로 푸는 게 아니란 말은 익히 들은 터. 간절한 의심으로 분별심 자체를 끊어야 성성적적(惺惺寂寂)한 화두 삼매에 이른다고 한다. 초롱초롱 깨어 있으면서도 고요하고 청정한 그 상태가 선불교가 말하는 우리 본래의 마음.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다. 글쎄 그게 어떤 상태란 걸까. 화두보다 더 궁금한 게 그런 의문 따위였다.‘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ㆍ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선 자리마다 모두 진리)’라는 임제 선사의 말씀이야 폼 나는 말이지만 진짜 가당한 일이냐 등등.
스님들의 수행처인 대승선원은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 선방 내부는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재가자들은 다른 전각에서 수행하는데 재가자 선방의 입방서를 쓰고 묵을 처소를 배정받았다.
저녁 수행 시간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사찰 내 백련당의 재가자 선방에 보살(여성 신도) 5명과 처사(남성 신도) 4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7시에 맞춰 입승(立繩ㆍ선방 운영을 총괄하는 소임)이 죽비를 치자 일제히 대웅전을 향해 삼배를 올린 뒤 각자 벽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초심자에게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수행 자세다. 반가부좌로 앉아 허리를 반듯이 세우며, 손은 연꽃 모양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혀는 말아서 입 천장에 대고 눈은 반쯤 떠 1~2m 앞에 시선을 내려놓는다. 한 여성 수행자(63)는 “건강을 위해서도 앉는 자세가 중요하다. 전에 허리 디스크가 있었는데 수행 후 깨끗이 사라졌다”며 “처음에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나아진다”고 일러 줬다. 하지만 그게 딱 10분 정도 가능했다. 그 뒤론 다리가 저려 오고 허리는 뻣뻣해지고 눈꺼풀은 천근처럼 묵직했다. 다리를 풀자니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고요를 깨는 통에 진퇴양난이었다. 50분 정좌 뒤 10분씩 쉬기를 세 시간. 화두 참구는 고사하고 다리의 통증과 싸우는 일이 급선무였다.
제 각각의 사연을 안은 수행자들
사찰의 하루는 오전 3시부터다. 이튿날 새벽 스물 여덟 번의 종소리에 맞춰 도량석(道場釋ㆍ새벽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돌면서 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 진행되자 재가자들은 선방에서 삼배를 올리고 다시 참선에 들었다. 오전 6시까지 세 시간, 이어 공양 후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수행은 계속됐다. 오후 수행까지 합치면 하루에 도합 10시간이다.
재가자들은 대부분 50, 60대들로 수행 경력이 5~10년 정도에 이를 정도로 공력이 만만찮았다. 재가자다 보니 가정사나 업무 등 개인 사정에 따라 수행 기간은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강원 양구군에서 왔다는 법명이 반야인 여성 수행자(51)는 한 달에 열흘씩만 정진하고, 부산에서 온 이석향(51) 동의과학대 교수도 틈틈이 이곳에서 정진한다. 디자인 전공인 이 교수는 30대 중반에 머리 깎고 출가, 행자 생활까지 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출가한 바람에 산중에 있기보다 품은 뜻을 세간에서 펴라는 어른 비구니 스님의 당부로 다시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부산의 한 선원에 머물면서 학교 강의에 나가고, 방학 때는 이곳을 주로 찾는다.
가장 나이가 어린 30대 후반의 남성 수행자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는 도중 이곳에 왔다. 그는 “옛날부터 안거에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사나 업무로 바쁠 텐데도 기자의 눈엔 거의 생고생으로 보이는 이 일을 하루 10시간씩 사서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 천주교인이었다는 반야 보살은 “예수님의 삶처럼 살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욕심에 가득 차 있어 힘들었다”며 “성당에서는 그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절에서 자비심을 찾게 됐다는 그는 “수행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이 오래 못 가서 문제긴 하지만…”이라며 밝게 웃었다. 수행 후 평온해지는 모습에 남편도 반가워해 한 달에 열흘씩 휴가를 준다고 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60대의 여성 수행자는 젊은 시절부터 훌훌 털고 선방에 나오고 싶었다고 한다. 그를 사로잡았던 강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아이를 키우며 늘 관세음보살 염불을 외던 그는 꿈을 꾸다 문득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동행한 스님에게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꿈을 깬 뒤 책을 읽고 여러 스님을 친견해도 궁금증을 채우지 못했다. 한번은 어떤 스님에게 물어보니 스님은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책을 갖고 나오나 싶어 기다려도 감감무소식. 몇 시간이 지난 뒤 스님이 나오더니 “왜 안 갔냐”고 되레 물었다. “답을 듣지 못했다”는 그에게 돌아온 스님의 답은 “스스로 찾으라”였다. 공부할 여건이 되지 못했던 그는 애들을 모두 키우고서야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선방을 찾게 됐다. 관세음보살에 대한 의문은 풀렸을까. “결국 그것은 나를 찾는 일”이라는 게 그의 답이었다.
명퇴 후 삶의 무상함 때문에, 혹은 삶의 황혼 녘에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오게 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제 각각의 사연을 지닌 재가자들은 그들만의 화두와 씨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는 또 다른 적과 싸워야만 했다. “눈을 감아선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온갖 잡념이 이어지더니 부지불식간에 의식이 몽롱해져 수마(睡魔)가 덮쳤다. 잠깐 꿈까지 꾸기도 했다. 참선의 장애물인 도거(掉擧ㆍ번뇌 망상으로 마음이 산란한 상태)와 혼침(昏沈ㆍ정신이 혼미해 몽롱한 상태)이 오락가락했다. 법명이 법경인 60대의 남성 수행자는 “처음 수행할 때는 앉아 있으면 망념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떠오른다”며 “두 달쯤 앉아 있었더니 차츰 마음이 고요해지더라”고 얘기해 줬다.
새해의 첫날, 세상은 온통 하얀 여백
한 해가 저무는 31일 저녁 선방은 여느 때와 달리 붐볐다. 신년 해맞이 손님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가족 5명이 한꺼번에 오기도 했는데 뒤늦게 들으니 인근 지역 법원에서 근무하는 판사 가족이라고 했다.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 이상배(55)씨도 혼자 선방을 찾았다.
이튿날 오전 7시께 해맞이 방문객과 안거 수행자들이 신년 해맞이 산행에 나섰다. 인근 봉우리인 인장바위까지 50여분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겨울 아침 산은 지독한 냉기를 내뿜는 얼음 지옥이었다. 디지털카메라마저 얼어 작동 불능. 그럴수록 추위를 뚫고 나오는 하얀 입김이 지옥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희망의 빛처럼 느껴져 기특할 지경이었다.
인장바위 부근에 오르자 새해가 밝아 왔다. 제 각각 새해의 소원을 비는 사이 서서히 퍼지는 햇빛에 눈 덮인 겨울 산은 더욱 하얗게 변했다. 문인화를 그리는 이씨는 “온 세상이 여백 같다”며 “이 깨끗한 하얀 여백의 세상에 내가 더러운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산행 때문에 이날 오전 수행은 없었다. 재가자들에겐 모처럼의 한가로운 오전, 한 처소에서 보살들이 산행으로 언 몸을 녹이며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짧다면 짧은 3일이었지만 낯선 방문객에게 늘 후덕했던 보살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이 따뜻한 아랫목을 권하며 끓여 주는 녹차엔 홍시보다 더 익은 맛이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온기였다.
다소 기이한 일이었다면 그 자리에 모인 재가자들이 1948년생 2명, 60년생 2명으로 모두 쥐띠였다. 기자도 72년생 쥐띠였다. 모두들 깜짝 놀랬다. 이것도 무슨 인연이란 뜻이었을까. 3일간의 체험으로 무슨 깨달음을 얻었겠냐만 그 녹차의 훈향에서 어떤 경계가 아득해지는 듯했다.
문경=글ㆍ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동안거는 어떻게
동안거는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3개월 가량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올해는 11월 20일부터 2월 17일까지다.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의 여름철 수행은 하안거라고 한다.
올해 동안거 결제에 들어간 스님들은 조계종 산하 100여개 선원에 2,200여명. 재가 수행자들은 따로 집계를 내지 않는데 대략 수백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들이야 엄격한 규율을 따르지만 재가자들은 가정사가 있다 보니 안거 기간 산문 출입이 다소 자유롭다. 직장인인 경우에는 주말에만 선방을 찾을 수도 있다. 재가자 선원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곳은 당대 선승으로 이름 높은 혜국 스님이 주석하는 충북 충주시 석종사, 진제 큰스님이 있는 부산 해운정사 등이다. 석종사의 경우 올해 동안거에 90명 가량이 신청했는데 절반 가량은 주말에만 찾는다고 한다. 3개월간 사찰에 머물며 숙식하고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찰에 따라 50만~70만원 선이다.
안거 기간 수행자들은 일종의 공동 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 외적인 생활에 관련한 일을 나눠서 맡는다. 일종의 반장격인 입승, 어른 스님의 법어 등을 기록하는 서기(書記), 종 치는 역할을 맡는 종두(鐘頭), 다각실을 관리하는 다각(茶角), 도량 청소를 담당하는 소지(掃地) 등 소임이 다양하다. 대개 안거를 시작할 때 대중공사(大衆公事ㆍ수행자들이 전원 참여해 벌이는 선방 회의)를 통해 각자의 소임을 정한다.
산중 사찰에 머물 수 없는 도시 직장인을 위한 수행 방법도 있다. 서울과 부산에 선원을 두고 있는 안국선원은 새벽반 오전반 오후반 등으로 나눠 하루 4시간씩만 수행 정진한다. 이번 동안거 기간 서울에서만 950여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안국선원에서 수행하기 위해서는 7박 8일의 간화선 집중 수행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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