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물가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시기 등을 미루며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 하고 있지만, 지금의 인플레 배경엔 보다 근본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그냥 '두더지 잡기'식으로 물가를 누르려 해서는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올해 인플레압력을 부추기는 핵심 3대 요소는 ▦중국발 인플레(차이나플레이션) ▦국제 유가 및 원자재가격 상승 ▦과잉 유동성이다.
■ 차이나플레이션, 中 초고속 성장 후유증 '직격탄'
중국발 물가상승 압력, 이른바 '차이나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의 인플레이션이 고스란히 한국으로 전이된다는 것. 중국과 교역 규모가 늘수록 그 영향은 커진다는 분석이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경제가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면서도 낮은 물가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덕분이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은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요소였다. 특히 미국이 이 덕을 많이 봤다. 그러나 매년 1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달성한 중국이 어쩔 수 없이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이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을 제1 교역국으로 삼고 있는 한국은 중국발 인플레이션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 있다. 중국 내 생산ㆍ소비자 물가가 오르면 국내 중간ㆍ최종재 수입 가격이 오른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한국의 수입물가 변동률이 중국의 생산자물가와 뚜렷한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세계경제 침체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중국의 생산자 물가는 지난해 4~7%의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섰다.
인건비가 고속 상승하고 있는 것도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기업의 생산단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베이징(北京)시가 올해 최저임금을 20.8% 인상하는 등 주요 도시에서 임금상승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자들의 연쇄자살 사건에 직면한 세계 최대 전자부품업체 팍스콘이 지난해 잇달아 직원 봉급을 올린 것도 임금 상승을 부채질했다. 중국이 원자재나 농산품 수입을 지금보다 늘릴 경우 국제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긴축모드로 전환한 중국이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차이나플레이션 압력은 어느 정도 해소될 전망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원자재·유가↑, 배럴당 한달새 12% 급등 '쇼크'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한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강세는 올해 물가를 자극할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11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80달러 초반에 머물렀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 큰 폭으로 올라 90달러에 도달했고, 이달 4일에는 배럴당 91.59달러에 달했다. 리먼 사태가 발발한 2008년 9월 15일(92.35달러) 이후 최고 가격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휘발유 등 국내 기름값은 물론 석유제품이 사용되는 각종 공산품 가격, 교통 등 공공요금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인플레 요소다. 실제로 2008년 2월 국제유가가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고 지속 상승하자, 3월 3.9%였던 소비자물가는 4월 4.1%, 5월 4.9%, 6월 5.5%, 7월 5.9%로 급등했다. 이 때문에 중기 물가안정목표 달성이 어려워졌고, 결국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당시 5%였던 기준금리를 1년 만인 8월 7일 5.25%로 인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국제유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어, 물가 급등이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에서 "수급 여건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원자재 가격의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국제유가는 세계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미국 등 선진국 재고는 감소하는 추세여서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오른 밀 옥수수 등 농산물 가격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구리 아연 등 비철금속 가격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과잉 유동성, 소비증가→ 인플레 기대심리 자극
돈이 넘치면 물가는 불안해지는 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건 불변의 진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과잉유동성은 소비자물가, 자산가격 상승의 가장 큰 위협요소다.
세계의 과잉유동성에 펌프질을 하고 있는 중심국은 미국. 미국은 리먼 사태 이후 사실상의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지난해 11월에는 연방준비제도(Fed)가 국채를 사들이는 '추가 양적완화'까지 단행했다.
넘쳐나는 달러는 신흥국과 국제 원자재시장에 흘러 들며 자산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해 새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외국인의 압도적 순매수 덕분. 골드만삭스는 올해 한국 코스피지수가 2,700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국내 증시 호황을 예상하는 근거 역시 '선진국의 과잉 유동성'이다.
넘치는 유동성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에서 2.5%로 올렸지만 아직까지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시중금리는 지난해 내내 하락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침체를 면치 못했던 부동산시장마저 저리대출을 기반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전세가격 상승세도 지난해에 이어 계속되면서 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富)의 효과'가 나타나면 소비가 늘어 경기가 살아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새해 주요 테마는 풍부한 시중 유동성과 저금리 환경, 해외자본 유입이 결합된 자산가격 랠리이며, 올해 한국경제에 가장 큰 하방 리스크는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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