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다, 민감하다, 다양하다.’ 토끼가 과학연구에 꼭 필요한 이유로는 크게 이 세 가지다. 순해서 다루기 쉽고, 민감해 약물에 잘 반응한다. 또 토끼만큼 다양한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실험동물도 드물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도 이미 토끼는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신묘년(辛卯年), 과학분야에서의 토끼의 활약상을 들여다본다.
새 항체치료제 개발 주역
최근 생명공학계와 제약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기술의 하나가 치료용 항체(항체치료제)다. 세계 시장규모가 매년 20%에 가깝게 성장하며 현재 3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원균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몸은 항체를 만든다. 이를 몸 밖에서 생산해 병 치료를 목적으로 약물처럼 몸 안에 주입하는 게 바로 항체치료제다. 특정 세포나 단백질만 골라 공격하므로 치료효과가 뛰어나고, 몸 안에 원래 있던 물질이어서 부작용도 적다.
한국과 스웨덴의 기업이 함께 만든 항체치료제 회사인 ‘앱클론’은 올해 안에 토끼를 이용한 새로운 유방암 항체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종서 앱클론 대표는 “현재 쓰이는 유방암 항체치료제로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약 10%만 치료된다”며 “나머지 환자들은 기존 치료제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항체치료제를 만들 땐 토끼나 쥐 같은 실험동물을 쓴다. 동물 몸에 이물질을 넣은 뒤 혈액 속에 생성되는 항체를 뽑아내는 것이다. 이 동물 항체를 사람 몸에 들어있는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나 구조를 일부 변형하는 등 ‘인간화’ 과정을 거치면 항체치료제가 완성된다. 기존 항체치료제 생산에는 대부분 쥐가 이용돼 왔다. 유전자가 간단해 인간화 과정이 비교적 쉬워서다.
토끼는 쥐 등 다른 실험동물보다 면역반응이 강해 훨씬 다양한 항체를 만들어낸다. 이 대표는 “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항체를 선별해 인간화시키는 방법으로 새 대장암 항체치료제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토끼 항체는 쥐 항체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암을 공격할 거라는 얘기다.
치료뿐 아니라 병을 진단하거나 연구하는데도 토끼 항체는 꼭 필요하다. 현재 쓰이는 연구용항체의 70~80%가 토끼 항체다. 예를 들어 암 조직 속에 특정 단백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단백질을 찾아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때 토끼로 그 단백질의 항체를 만든 다음 암 조직과 반응시키면 항체가 단백질을 정확히 찾아내 달라붙는다.
번식력, 민감한 귀, 큰 눈이 장점
토끼는 보통 7~10년 산다. 수컷은 6~10개월, 암컷은 5~9개월이면 생식이 가능하다. 성(性) 성숙이 상당히 빠르다. 발정기 때 암컷은 3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자극을 주면 배란이 된다. 한번에 낳는 새끼 숫자도 7~9마리로 많다. 단순 계산으론 1년에 60마리까지도 낳을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토끼는 생식이나 발생, 기형 등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
고우석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원은 “실제로 1950년대 후반 임신부의 입덧 방지용으로 판매됐던 약물인 탈리도마이드는 다른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토끼로 실험한 결과 팔다리가 짧아지는 기형이 생긴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 달 남짓한 임신기간 동안 토끼 태자(胎子)가 기형 유발물질에 특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토끼의 특징적인 외모도 연구에 중요하다. 토끼 귀는 사람보다 민감하다. 화장품이나 연고를 개발할 때 피부에 어떤 자극을 주는지 확인하는 실험에 토끼 귀가 이용돼온 이유다. 또 토끼 귀엔 털이 없어서 피부 바로 아래 혈관을 맨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일본에선 담배를 피울 때 혈관이 쪼그라드는 모습을 토끼 귀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토끼 눈은 얼굴 양 옆에 붙어 있어 시야의 각도가 넓어 190도나 된다. 눈도 커서 관찰하기도 좋다. 이홍수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원은 “대부분의 안약이 토끼 눈을 이용한 눈점막 자극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동물복지 차원에서 토끼 눈이나 귀를 직접 이용하는 실험은 가능한 피하고 죽은 소의 눈이나 인공피부로 대체되고 있다.
애완토끼 아침 변 그냥 두세요
토끼의 맹장은 동물 가운데 가장 길다. 용적이 위의 10배에 달한다. 하지만 소화관 전체 길이는 짧은 편이라 영양성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토끼가 배설한 변 중 3분의 1 정도는 단단하지 않고 부드럽다. 이는 비타민과 리보플라빈, 질소함유물, 판토텐산 같은 영양성분이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산토끼는 낮에, 집토끼는 밤에 주로 이런 부드러운 변을 배설하고 스스로 다시 먹는다. 집에서 토끼를 키운다면 아침에 변을 치우지 않는 게 좋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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