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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맛있는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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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맛있는 두부

입력
2011.0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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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요리당고(花よりだんご). 한 때 꽃미남들이 누나들의 혼을 빼놓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 원제목으로 유명해졌지만, 본래 뜻은 '꽃보다 경단'이다. 꽃구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특히 일본식 떡꼬치를 일컫는 말로 우리 속담으로는 '금강산도 식후경' 쯤 되지 싶다.

여차여차해서 교토에 살게 되었을 때 소위 '교토 통'들이 가장 많이 해 준 말은 구경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 많이 먹으라는 것이었다. 내심 그것도 조언이라고, 싶었다. 구경은 그렇다쳐도 밍밍하고 심심한 일본 음식이 맛있다니, 하긴 입맛도 가지가지일 테니 생각하면서.

그런데 조금 살다 보니 '구경 다니면서 먹는 일'에 관한 한 교토를 따라갈 만한 곳이 없을 듯했다. 고도(古都) 구석구석의 노포(老鋪)들을 기웃거리며 보고 듣고 맛보는 일은 유서 깊은 절과 신사 순례보다 더 매력적인 감각의 순례였다. 사랑은 위(胃)를 통해 온다고, 노포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먹는 가게인데, 100년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교토의 오래된 가게들 사이에 300년을 훌쩍 넘는 두부집이 있었다. 서울에 돌아 온 후, 교토의 음식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것도 다름 아닌 그 두부였다.

중국 한나라의 유안이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는 두부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불분명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두부도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물 맑고 절 많은 교토는 그래서 당연히 두부의 고장이 되었을 테고. 기요미즈테라와 난젠지, 료안지 등 유명 사찰 부근의 오래된 두부집은 언제나 줄이 길었다. 맛자랑 멋자랑을 하는 공들인 두부요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작 끓는 다시마 육수에 넣었다가 건져먹는 '유도후'(湯豆腐)를 위해서였다.

게다가 유도후의 맛은 '무미'에 가깝다. 다시마 육수와 파, 시치미(七味)는 그 담백한 무미를 강조할 뿐, 결코 두부 자체의 맛을 변화시키거나 더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두부가 보다 일반적인 음식이 되고, 18세기에는 두부요리책 <두부백진(豆腐百珍)> 이 발간될 만큼 끓이고 지지고 굽고 튀기는 갖가지 조리법이 등장했지만 그 오래된 두부집은 '무미'를 고수해 온 모양이다. 슈퍼에 가면 목면두부 비단두부 참깨두부 녹차두부 강낭콩두부 남자다운두부 등 맛도 형태도 다양한 두부가 즐비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무미'앞에 줄을 섰다. 한 일본인 친구의 "그래 봤자 두부를, 그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성토가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몇 번이나 그 집 앞에 줄을 서곤 했던 것은 왜일까?

요네하라 마리의 <부엌의 법칙> 을 읽다가 밑줄을 쳤다. "부엌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요리 솜씨는 좋지 않고,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그것을 먹어 치우는 데 드는 시간은 반비례하고, 실패한 요리는 손을 대면 댈수록 맛없어지며, 열심히 만든 음식일수록 평은 좋지 않고,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언제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 <미식견문록>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야들야들한 무언가가 먹고 싶은 추위가 극심한 겨울날, 시간을 들여 열심히 만든 명절 음식이 고스란히 냉장고에 가득한 것을 보고서였다. 창밖에는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 다시마 한 조각을 넣었다. 그리고 틀림없이 냉장고 깊숙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두부 한 모를 찾기 시작했다. 맛의 비결, 최소한의 노력이란 일상성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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