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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우리가 뛴다] <4> 육상계 풍운아 마라톤 전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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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우리가 뛴다] <4> 육상계 풍운아 마라톤 전은회

입력
2011.01.0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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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육상계의 '사고뭉치'로 통했다. 가는 곳 마다 말썽을 일으켜 그렇게 불렸다. 10대 후반부터 시작된 방황은 끝날 줄을 몰랐다. 숙소를 몰래 빠져 나와 밤새도록 술도 마셨고 여자도 안아봤다. 훈련은 남의 일이었다. 자연스레 사고뭉치라는 말이 그의 이름 앞에 따라 붙었다. 그를 지도한 감독들도 서서히 지쳐갔다.

재능이 아까워 탈선과 방황이 끝나기를 기다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내린 결론은 "쟤는 끝났다"였다. 챔피언 자리에 서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그에겐 '극기 DNA'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에 들어섰을 뿐인데 말이다. 육상선수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도 그는 남들이 한 평생 다 들어도 듣기 힘든 온갖 험한 말을 다 들어야 했다. 전은회(23ㆍ 대구도시공사) 이야기다. 한때 '제2의 황영조'라는 찬사를 들었다는 바로 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무엇엔가 홀린 것 같다고 말하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일겠지만 그 말 이외엔 달리 해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풍운아' 전은회가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났다. 지난해 3월 김홍화(53)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그 후 7개월이 흐른 10월23일. 전은회는 자신의 두 발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체육대학 장거리육상대회 1만m에서 28분23초62로 24년 묵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김종윤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작성한 종전 한국기록(28분30초54)을 무려 6초92나 단축했다. 그럼에도 육상계는 아직 전은회를 온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정서가 일반적이다. 전은회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옥죄고 있는 편견을 깨려면 더욱 '화끈한' 기록을 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올 3~4월 열리는 국제대회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겨냥하고 있다.

4일 오후 경북 경산시 경북체고 운동장에서 만난 전은회는"'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제게 와 닿는 말이 없습니다. 금빛 메달과 월계관을 위해서 달리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이 억울해서 달립니다. 보란 듯이 보상받을 겁니다"라며 이를 악물었다.

서울 불광중 1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한 전은회는 육상명문 배문고 1학년 때부터 5,000m와 1만m를 모두 석권했다. 고등부 5,000m 최고기록(13분56초59), 1만m 최고기록(29분31초89·이상 2006년 6월 호크랜챌린지)이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라톤 명문 건국대에 진학하면서 방황하기 시작됐다. 학교를 중퇴한 뒤 2008년 삼성전자에 입단했지만 음주와 팀 무단 이탈 등으로 퇴출됐다. 이후 1년 가까이 운동을 접었다. 그러다 지난해 김홍화 감독과 인연을 맺으면서 다시 신발끈을 조여맸다.

그는 "육상계에서 퇴출된 뒤 배가 고파 3개월여 식당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그때 김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곁에 있던 김감독은 "4월 로테르담 마라톤에 출전, 2시간 6분대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입니다"라며 거들었다. 그는 이어"저와 전은회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명예를 위해 달린다면 우리는 인생의 승부를 걸고 뛰기 때문에 승산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를 위해 5,000m를 12분대로 골인하는 케냐 선수를 트레이닝 파트너로 데려올 계획입니다"라며 웃었다.

전은회도 "제 별명이 괴물입니다. 한번 하겠다고 맘먹었다면 반드시 쟁취하고 뿌리뽑는 게 제 성격입니다. 여태껏 저지른 오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케냐선수들이 두렵지 않느냐구요? 저는 저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더 두렵습니다."

■ 전은회는

●생년월일 1988년 5월15일

●신체조건 177cm, 56kg

●출생지 서울

●출신학교 불광중, 배문고, 건국대

●소속팀 대구도시공사

●혈액형 B

●별명 괴물

●취미음악 감상

●최고기록 1만m한국신(28분23초62)

●주요이력

2010년 10월23일 일본체육대학 장거리 경기대회 1만m 2위=28분23초62 한국신

하프마라톤 최고기록= 1시간3분40초 2007년 2월 제61회 카가와마루가메대회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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