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지 않게 다양한 면을 살피고 사고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세계일주 여행에 나섰습니다."
올해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는 우은정(26ㆍ사진)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바로 연수원에 입소하지 않은 이유다. 2008년 말 사법시험에 합격한 우씨는 올해 초 나홀로 세계 여행을 떠나 1년 가까이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24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뒤 연수원 입소 준비를 하고 있다.
158㎝ 키에 약간 마른 체형인 우씨는 지난 1월 26일 55ℓ용량의 배낭에 짐 20kg을 꾸려 메고 무작정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다. 그는 남아공을 시작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탄자니아 케냐 이집트를 거쳐 터키 오만 요르단 레바논 스페인을 비롯해 미국 쿠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 구석 구석을 무려 319일 동안 훑고 다녔다.
나 홀로 세계여행은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물, 전기가 없어서 씻지도 못하고, 4일만에 어렵게 찬 물을 받아 샤워할 기회가 있었는데 '똑, 똑,'떨어지는 물을 보면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엉엉 울었어요." 강렬한 태양과 오염된 물 때문에 머리 끝은 다 갈라지고, 식중독에 걸려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세계여행에 대한 꿈은 우씨에게 사법시험 합격의 동력이 됐다고 한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시험 준비를 할 때 방 안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시험만 합격하면 나에게 세계일주라는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동기부여가 돼서 고시 생활을 2년 반만에 끝냈죠."
우씨가 세계일주를 하는 데 들인 경비는 총 3,000만원. 이화여대 법학과 3학년이던 2008년 겨울에 사법시험을 합격한 그는 여행경비를 마련하고자 고시학원 보조강사부터 이태원 바텐더까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돈을 모았다. 여행경비를 마련하는데 1년을 허비하는 바람에 시험 준비하는 동안 고대하던 세계여행도 그만큼 늦어진 것이다.
우씨는 여행 중에 만난 가장 소중했던 인연으로 에디오피아의 17세 소년 모하메드를 떠올렸다.
가난해서 학교도 못하고 맨발로 다니는 소년은 "밥 사달라"는 말을 못해 자신이 밥 먹을 동안 "밥 먹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며 마을을 몇 바퀴씩 돌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우씨는 "모하메드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인데, 포기하지 말고 그 꿈을 이루라며 200달러를 손에 쥐어줬다"고 말했다. 에디오피아 식당에서 밥 한끼는 50센트(600원) 정도다.
지난달 10일 귀국한 우씨는 "넓은 세상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밑천삼아 다양한 시각을 갖고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 국제형사재판소 등 국제인권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연수원 생활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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