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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력인들, 책 읽을 권리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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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력인들, 책 읽을 권리 '깜깜'

입력
2011.01.0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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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저시력인을 위해 큰 활자로 찍은 문학전집이 나왔다. 시각장애인의 책 읽을 권리 운동을 펼치는 큰글편집위원회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고전 50권을 최근 펴냈다. 큰글문학전집은 저시력인이나 노인도 읽기 쉽게 A4 판형에 일반 책 활자(10~12포인트)의 2배 정도인 20.5 포인트로 인쇄했다. 면마다 음성변환 바코드가 박혀 있어 판독기를 갖다 대면 책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다. 글자가 크다 보니 작품마다 대부분 2~4권으로 부피가 늘어나 실제 종 수로는 22종이다.

저시력은 수술이나 약물치료,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등으로 교정을 해도 시력이 0.3 이하, 시야가 30도 이내로 좁아진 시각장애를 가리킨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전맹과 달리 시력이 일부 남아 있지만 일상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저시력인은 최소 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국내 연간 출판물 약 5만종 가운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녹음도서, 큰 활자 책 등 대체 자료는 2%도 안 된다. 이 중 큰 활자 책은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출발한 도서출판 점자가 펴낸 53종과 이번에 나온 큰글문학전집 22종이 전부다. 큰글문학전집은 도서출판 생생이 저작권과 판권을 기부해 줘서 나왔다. 원로 불문학자 민희식(77)씨도 자신이 번역한 100여권의 프랑스문학 도서 중 20여권의 저작권을 기부, 이번 출간에 큰 힘을 보탰다.

큰 활자 책은 제작비가 일반 책의 2~3배나 된다. 자연히 책값도 비싸진다. 큰글문학전집은 권당 2만6,000원, 도서출판 점자의 책은 권당 1만4,000~2만6,000원이다. 이 책들은 주로 공공도서관에 들어갔다. 개인이 일반 책과 같은 값에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왕립맹연구소(RNIB)와 책읽을권리동맹이 펼치는 운동에 호응, 큰 활자 책을 일반 도서와 같은 값에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제작비와 판매가의 차액을 보조해 주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과 출판사는 2007년 이 책의 큰 활자본과 일반 도서본을 같은 가격에 발행했다. 미국과 유럽은 1970년대부터 도서관마다 독서장애인 도서 코너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도 과반수 도서관이 큰 활자본 서가를 갖추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큰 활자 책 대신 국내 저시력인은 주로 돋보기나 확대독서기 같은 보조기기, 녹음도서, 음성변환 장치 등을 이용해 책을 보고 있다. 독서용 음성 지원 소프트웨어는 60만원이나 한다. 카메라 달린 모니터가 글씨를 확대해서 보여 주는 책상 고정형 확대독서기는 더 비싸서 300만~400만원이나 된다. 이처럼 비싼 장비는 지자체가 매년 여름 신청을 받아서 구입비의 80%를 대주는 제도가 있지만 예산이 적어 신청해도 지원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미순영(63)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도 네 해 연속 확대독서기를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정치학 박사로 중국 전문가인 그는 고 2 때 저시력인이 됐고 지금은 거의 실명 상태다. 망원경으로 칠판을 보고 남이 읽어주는 책으로 또는 책을 확대 복사해서 읽으며 공부한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저시력인들을 위해 1999년 연합회를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흡수하는 정보의 80%는 눈으로 보는 것인데 저시력인 등 시각장애인은 정보 접근권이 극히 제한돼 있다”며 “저시력인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큰 글자 책, 독서 보조기기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70% 정도는 후천적으로 그리 된다. 노령 인구의 상당수는 저시력인이다. 따라서 그들의 책 읽을 권리는 그들만의 투쟁이나 시혜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모든 이의 관심사여야 할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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