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 발목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관절경 시술까지 받았지만, 그 뒤로도 발목이 불안하다. 할 수 없이 일반구두 대신 기능성 구두를 사서 신은 지 이태가 넘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이러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일반 구두를 신으며 겪는 고통이야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형편이 넉넉한 장애인들이야 정형외과의 정밀측정을 거쳐 맞춤형 특수구두를 주문해 신을 수 있지만, 장애가 심각할수록 형편이 어려운 것이 세상 현실이다. 많은 대상자들이 모르고 지나치지만, 장애인에게 기능성 구두를 사실상 무료 제공하는 사업이 있어 위안이 된다.
■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건강보험공단, 사회단체 등이 함께 벌여온 '장애인 정형외과 용 구두 전액 무료지원 사업'은 장애인들에게 긴요한 기능성 구두를 국비(80%)와 민간 후원금(20%)으로 만들어 주는 사업이다.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기초단체가 장애인들에게 사업 내용을 알리는 안내문을 발송하고, 장애인이 가까운 협력병원에서 측정의 처방을 받고, 제조사가 구두를 제작해 보내주고, 관련 자료를 근거로 건강보험공단이 지원금을 사업단체에 지급해 정산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은 22만원 상당의 고급 구두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 이 사업은 전달경로를 늘려 복지가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대표적 예다. 수요 특성상 정부가 직접 구두를 나눠주기도 어렵지만, 설령 그렇게 할 경우 제조사 선정과정의 잡음을 피하기 어렵고, 제조사 이윤 외에는 다른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이와 달리 현재의 사업 방식은 제조사와 협력병원, 사업단체 관련 종사자 등에게 고루 부가가치를 떨구고, 협력병원의 측정담당자로 장애인이 고용되는 부수효과도 기대된다. 현재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 건강보험공단의 지원금 지급 지연이라니, 민간의 상대적 활력은 복지사업에서도 뚜렷한 셈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맞춤형'및 '촘촘한'복지를 강조했다. 여당 다수론인 '선택형'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생애 단계별' 복지와 닮았고, 야권의 '보편적' 복지와는 거리가 크다. 그러나 촘촘한 '맞춤형'복지에는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추가비용 못지않은 관리비용이 필요하다. 진정한 수혜대상을 가리기 위한 비용도 크지만, 행정 말단의 끊이지 않는 부정ㆍ비리를 감시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찮다. 정형외과 용 구두 사업처럼 행정은 최종 지급만 맡고, 대부분의 절차를 민간에 넘기는 것이 '관리비용' 절감의 유력한 방안일 수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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