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 하며 김준봉 교수가 번역한 로버트 해스팅스의 이란 시를 읽는다.
"우리들은 자신이 긴 여행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종착역에 도착하면 많은 멋진 꿈들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쉬지 않고 객차의 복도를 서성거리며 지체하는 순간들을 욕하며 종착역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종착역에 도달하면 다 되는 거야' 하고 우리는 소리친다. '내가 18살만 되면', '내가 승진하면', '막내 아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내가 은퇴만 하면'..."
미래 위한 희생은 바보짓
우리가 미래라는 종착역만을 위해서 애쓴다면서 도리어 인생을 허비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미국 시인의 시에는 '대학만 입학하면'은 없지만, 우리는 '내가 대학만 입학하면', '내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 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하버드 대에서 긍정심리학을 강의한 탈 벤 샤하르의 강의 동영상을 보면'하버드에 입학하기만 하면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할 것만 같았지요? 어때요, 이제 하버드 학생이 되었으니 여러분은 행복하기만 한가요?' 라는 질문에 수 백 명의 수강생들이 발을 구르며 웃는 장면이 있다. 시험과 과제에 허덕이며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사는 하버드 학생들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은 마치 황당한 농담처럼 들렸던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보상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 큰 일을 성취한다고 해서, 엄청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은 한마디로 바보짓이다.
오늘을 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마치 아이들처럼 현재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안다. 행복한 삶은 성과물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다.
'아이에게 하루는 짧고 일년은 길다. 그러나 어른에게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현재에 충실하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열심히 산다. 그래서 그들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가면서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참는 것'에 익숙해진다. 물론 그 것은 때때로 필요한 일이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의 행복은, 실제로 이루어지면 그만큼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 저자인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길버트는 이를 '행복에 대한 거짓 신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과도하게 미래를 준비하느라 도리어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해스팅스의 시는 계속된다. "우리는 종착역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은 여행 그 자체이다. 종착역이란 단지 꿈일 따름이다. 종착역은 항상 우리를 앞질러간다.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오늘의 짐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며, 미래에 대한 공포이다. 회한과 공포는 우리들로부터 오늘을 훔쳐가는 두 도적이다. 그러니 통로를 서성거리고 이정표를 따지는 것을 중단하라. 그 대신에 등산을 더 즐기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더 먹고 맨발로 편히 쉬는 시간도 더 많이 가지고 수영도 자주 하고 석양도 더 감상하면서 더 많이 웃고, 되도록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저절로 꾸려진다. 종착역은 기다리지 않아도 삽시간에 닥쳐오고 만다."
지금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삶
새해다. 한 해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느껴진다면, 그리고 하루하루가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혹시 마음 속에 신기루 같은 종착역을 만들어놓고, 소중한 나의 오늘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새해에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 되자. 오늘을 살며, 현재의 작은 일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과정을 매 순간 즐기며 감사하는 삶을 살자.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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