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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화려한 전쟁 영화도 역사 의식 빼놓으면…

입력
2011.01.0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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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은 충무로 전쟁영화 중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6ㆍ25전쟁 휴전 10주년이 되는 해에 개봉한 이 영화의 여러 장면은 4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탄성이 나온다. 인천상륙작전 뒤의 시가전을 재연한 도입부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좀 과장된 비유이긴 하지만)의 초반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박진감 넘친다. 총탄을 막아 줄 멍석을 두르고 수류탄을 든 채 벌판을 뒤덮은 좀비 같은 중공군의 모습에서 단어로만 머릿속을 맴돌던 인해전술의 실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고 이만희(1931~1975) 감독은 역사의 한 자락을 그렇게 필름으로 증언한다.

당대의 눈길을 사로잡은 스펙터클도 참 대단하지만 엄혹한 냉전의 시대 인간애를 강조하는 이 감독의 연출은 더욱 놀랍다. 최 해병(최무룡)이 전투를 앞두고 담담하게 던지는 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한다. “전장 정리라는 게 있어. 적의 시체를 치우는 염쟁이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이야. 죽은 다음엔 상호 간에 미울 게 없으니까 치워 주는 게 옳지. 놈들의 묘를 잘 써 줘야 해. 그래야 후손이 착한 놈이 나오거든.”

지난해 제작 규모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한국 영화는 6ㆍ25전쟁 60주년을 맞아 개봉한 ‘포화 속으로’(감독 이재한)였다. 1950년 여름 인민군으로부터 경북 포항시를 사수한 학도의용군의 활약상을 다룬 이 영화는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와 호화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시선을 모았다. 청춘들의 산화에 코끝이 시큰했지만 과도하게 스타일시한 화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반전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전장의 참혹한 모습을 멋스럽게 묘사하려는 카메라의 어정쩡하고 이중적인 태도가 불쾌했다. 이 영화에서 역사는 단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335만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라는, 나쁘지 않지만 성에 차지 않는 흥행 결과를 얻게 된 이유일 것이다.

올해 여러 충무로 영화 중에서도 6ㆍ25전쟁을 다룰 두 편이 눈에 띈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휴전 협상 중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남북한 군인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그린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감독 김익로)는 다음날 휴전이 이뤄지는 사실을 모른 채 전투를 벌이는 남북한 군인의 웃지 못할 상황을 전한다.

‘고지전’은 제작비 100억원대의 대작 드라마이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 휴먼 코미디를 표방한다. 서로 다른 외피를 둘렀지만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같다. 액세서리처럼 반전 메시지를 끼워 넣지도, 전쟁 액션의 쾌감을 돈벌이에 너무 이용하지 말기를. 무엇보다 역사의식의 부재라는 쓴 소리는 듣지 말기를. 아무리 오락적 기능을 강조해도 영화 속 역사도 역사니까.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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