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지난해 굵직한 일들이 잇따랐다. 우선 2010년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삼성의 구심점이면서 경영의 축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전격 복귀한 것도 사사(社史)에 남길만한 사건이다. 또 핵심 주력사인 삼성전자는 분기마다 사상 최대의 실적 잔치를 벌이며 세간의 부러움을 한 몸에 안았다. 이러한 성과는 연말 사상 최대 임원 승진 인사로도 이어졌다.
특히 삼성의 신성장 사업을 발굴하고, 각 계열사 사업을 조정할 콘트롤타워로 미래전략실이 복원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진공관과 TV 브라운관 등을 제조하던 삼성SDI를 리튬이온전지 등의 신수종 사업을 통해 에너지 회사로 환골탈태시킨 김순택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임명한 것에서 이 회장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 동안의 삼성이 아닌 또 한번 크게 변할 삼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 실장은 최근 2011년 그룹 경영 방침을 '창조와 혁신을 통한 새로운 도약'으로 정한 뒤 이를 위한 '2011년 10대 중점 추진과제'를 이미 각 계열사에 전달했다. 삼성이 그룹 경영 방침과 중점 추진 과제를 하달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옛 경영전략실 시절 삼성의 경영 방침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 창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이었다. 그러나 이미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경쟁력을 갖춘 만큼 이젠 창의력과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미래전략실의 판단인 셈이다. 10대 중점 추진과제는 이러한 그룹의 경영 방침을 각 계열사가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라 할 수 있다. 미래전략실은 먼저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위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차별적 경쟁 역량 강화 ▦신기술 특허 등 기술 리더십 확보 ▦차별화한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파워 강화 ▦콘텐츠 솔루션 등 소프트 역량 확충 등을 주문했다. 또 미래대비를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 집중 발굴 육성 ▦글로벌 인재 확보 ▦유연하고 역동적인 조직문화 구축 등을 과제로 내놓았다. 이외에도 ▦경영시스템 선진화 ▦상시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 확립 ▦소통ㆍ상생협력 강화 등도 강조했다. 각 계열사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 사업계획 등을 작성, 운영하게 된다. 2011년 삼성의 행보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큰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ㆍ에버랜드 사장, 작은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ㆍ제일기획 부사장이 경영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삼성의 3세 경영 체제가 닻을 올리고 본격적 항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1년 삼성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3세 경영 체제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안착될 지로 모아지고 있다. 이재용 사장은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으로 이제 실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 된 만큼 경영 능력과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에 이어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까지 맡아 경영 참여의 외형을 넓혔다. 이부진 사장이 또 어떤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게 될 지가 관심인 가운데 외부 인수ㆍ합병(M&A)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제일모직과 제일기획을 맡게 된 이서현 부사장도 어떤 비전을 보여줄 지 관심이다. 패션업과 광고업의 경우 경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험이 없는 게 아니지만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다. 특히 제일모직 소재 부문의 신사업 개척에 공이 큰 남편 김재열 부사장이 어떤 역할을 할 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적잖은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이미 지적한 대로 앞으로의 10년은 지나간 10년보다 훨씬 빨리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변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회장의 경영 복귀 일성처럼 지금 1등 하는 삼성의 제품이 10년 후엔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10년 후 삼성의 모습을 사실상 결정하게 될 2011년, 미래전략실과 3세 경영 본격화로 새로운 진용을 구축한 삼성이 과연 창조와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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