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고 싶다
저녁 연기
자욱한 먼 마을
● 경주 남산을 다녀왔다. 부처님들이 산에 가득했다. 부처가 길의 이정표였다. 부처님들은 등에 산이나 무한천공을 지고 있었다. 부처는 다른 부처나 자신을 보고 있지 않고 사람세상과 삼라만상을 보고 있었다.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이 땅의 사람들' 고은의 또 다른 짧은 시처럼 이 땅의 사람들 어진 마음 되살아나 사람이 사람의 이정표가 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절하고 싶은 세상을 꿈꿔봤다.
위의 시는 전문이 세 줄인 시다. 밥 짓는 연기 나는 옛 마을 풍경을 아스라이 그려주는 짧지만 울림이 큰 시다. 나는 이 시를 저녁 무렵 산책길에 간간이 읊조려본다. 그러면서 작금에 절하고 싶은 대상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개가 물 먹는 소리, 구름빛 낮달, 수없이 씨앗을 쏟아내는 수세미…, 그리고 모든 지나간 시간과 지나온 풍경들. 급기야, 내가 더 깊어지거나 세상이 온통 맑아져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냥 절하고 싶은 오롯한 풍경화 한 점으로 다가왔으면 하고 꿈도 꿔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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