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하려는 딸의 미래를 위해 외손자를 친양자로 입양하게 해 달라는 신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친양자 입양제도' 도입 후 간간이 제기된 유사한 재판에서 하급심이 엇갈린 선고를 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향후 하급심 선고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A(58)씨 부부가 "사실상 딸처럼 데리고 키우던 다섯 살짜리 외손녀 B양을 친양자로 입양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낸 사건을 원심과 같이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A씨 부부는 2006년 자신의 딸이 B양을 낳은 뒤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과 헤어지자 딸의 남은 인생을 위해 B양을 자신의 친양자로 입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2년 전 소송을 냈다.
2008년 1월1일부터 시행된 친양자 입양제도에 따르면 친양자로 입양되면 친부모와 친족관계 및 상속관계는 모두 종료되고 양부모의 혼인 중 출생자로서의 신분을 갖게 된다.
재판부는 외손녀의 친양자 입양과 관련해 ▦자녀의 실질적 복리 ▦친양자 입양의 동기와 필요성 ▦가족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3가지를 따져야 한다며 판단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A씨 부부가 현재 상태에서도 B양을 양육하는 데 어떠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없고 청구의 주된 동기도 B양의 복리가 아니라 B양 생모의 재혼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B양을 친양자로 입양하면 A씨 부부는 외조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고, 생모와 B양은 자매지간이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며 외손녀를 친양자로 삼게 될 경우 심각한 가족관계의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분명히 했다.
앞서 창원지법은 지난해 8월 C씨 부부가 낸 유사한 소송에서 입양을 허용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외손자를 친양자로 입양하면 유대관계가 돈독해지고, 혈연관계의 아이를 소목지서(昭穆之序ㆍ양자로 될 수 있는 사람은 양친이 될 사람과 같은 항렬에 있는 남계 혈족 남자의 아들이어야 한다)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양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A씨 사건을 담당했던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신청을 기각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사안마다 달리 판단할 사유들이 충분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경우처럼 친양자 입양으로 전통적 가족관계의 변동이 생길 수 있는 때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하급심에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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