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해를 맞으며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ㆍ1861~1941)의 <동방의 등불(燈燭)> (원제 The Lamp of the East)을 떠올린다. 동방의>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조선에 부탁> 1929.4.2. '동아일보', 주요한 번역) 조선에>
1913년 동양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일본과 중국에는 갔으나 조선에는 오지 않았다. 1929년 세 번째 일본 방문 때도 조선방문 제의에 응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 넉 줄 시로 써서 동아일보에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뒤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 /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로 깨어나소서' 운운하여, <기탄잘리> 의 35번 시 귀와 합해져서 널리 퍼졌다. 타고르에 대한 이런 신화가 이어져 지금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12종에 외국시인 가운데 타고르가 선두로 무려 4편이나 실려 있다. (이옥순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 (푸른역사, 237쪽) 식민지> 기탄잘리>
이런 한국 사람의 짝사랑에 비하면, 한중일 가운데 조선에만 들리지 않은 타고르가 1924년 중국에 온다는 소식 등 그 즈음 2~3년 사이 동아일보에 실린 그의 기사는 23건에 이르렀다 하고, 조선은 역대로 두보(杜甫)만 사용한 시성(詩聖)이란 이름으로 그에게 존경을 보냈다. 김억(金億)이 1923~1924년에 <신월(新月)> , <원정(園丁)> 등을 번역 소개했고, 만해(卍海) 한용운은 1925년 <님의 침묵> 을 내면서 그의 시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를 비판했다. "벗이여, 벗이여"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만해는 그의 시를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모치는 백골의 향기"이며, "화환을 만들랴고 떨어진 꽃을 줏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줏은 절망의 노래"라고 비판했다. ( <타골의 시(gardenisto)를 읽고> ) 민족주의적 희망을 늦출 수 없었을 터이다. 타골의> 님의> 원정(園丁)> 신월(新月)>
2010년 연말 이 나라 남녘에는 두 개의 등불이 켜졌다. 서울 종로 조계종의 총 본산 조계사 일주문 앞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목(聖誕木)에 불이 켜졌고, 민통선 애기봉에는 7년 동안 꺼졌던 대형 성탄목에 다시 불이 켜졌다. 조계사에 세워진 성탄목이 종교 간의 화합과 4대강 죽이기를 반대하는 '상생의 등불'이라면, 애기봉에 다시 켜진 성탄목은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합의한 모든 선전수단 제거라는 약속을 깨뜨린 전쟁의 표적이 되었다.
애기봉 밑 민통선 평화교회에서 15년을 목회해온 이적 목사가 기고한 글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울린다.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평화를 깨뜨리는 저 불빛은 지금 당장 꺼져야 한다." 그리고 조계사의 성탄목은 타고르가 예언한 '동방의 등불'로 불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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