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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2> 밥만큼 많이 먹었던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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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2> 밥만큼 많이 먹었던 '욕'

입력
2011.01.02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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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야구는 나에게 은인이다. 학창 시절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도 야구고, 사람답게 만들어준 것도 야구다. 물론 지금까지 밥 먹고 살게 해준 것도 야구다. 지금도 이따금 ‘내가 야구를 안 했다면 뭘 하며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야구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이름을 날릴 정도의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대학 때까지는 선수로, 이후로는 교사로, 또 그 후로는 해설자로 살았다.

고교 체육교사에서 갑자기 해설자로 변신한 나는 해설 초기에는 시청자나 청취자의 반응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마이크 앞에 앉으면 그저 내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세 시간 동안 큰 탈 없이 해설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나 그렇듯, 좀 시간이 흐르고 여유가 생기자 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특별히 애써서 알아볼 것도 없었다. 야구가 끝나면 곧바로 전화를 통해 항의가 빗발쳤다. 항의 내용은 매우 다양했다. 술 취한 목소리로 한 시간 넘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욕만 하다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 특정 상황을 놓고 나와 토론을 하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로 노골적인 항의와 욕이 빗발쳤다. “야 인마, 그딴 식으로 해설하려거든 당장 집어치워!” “밤길 혼자 다니지 마라. 몸조심해!”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였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82년 3월27일, 나는 해설을 마치고 KBS 사옥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성 시청자였다.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다.

나도 그때는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욕만 안 했지 시청자에게 맞불을 놓았다. “여보시오, 지금 안 보인다고 해서 말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요, 누군 욕을 할 줄 몰라서 참는 줄 아시오.” 나는 이로 혀끝을 꼭 깨물었다. 욕설만은 하지 않기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도 시청자는 “이 자식아, 그럼 해설을 제대로 하든지. 너 A팀한테 돈 받았지, 다 알아. 아니라면 왜 그 팀만 편을 드는 거야, 들어 보면 다 안다니까.”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보다 못한 PD와 기자들이 옆에서 전화를 끊어버리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기를 꾹 참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잠시 뒤 또 전화가 걸려왔다. 낮게 깔린 점잖은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하일성씨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하일성입니다.” “네? 네 좋아하네. 이 자식아 넌 B팀 앞잡이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내가 하일성인 것을 확인한 사람은 ‘신사’에서 ‘깡패’로 돌변했다. 더 어처구니 없었던 것은 조금 전에는 A팀 편든다고 실컷 욕 먹었는데, 잠시 뒤 B팀 앞잡이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억울해서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공익성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방송하는 나에게 편파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내 해설이 그런 식이었다면 방송국에서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해설자가 아무리 해설을 잘해도 보는 시각에 따라 그 해설은 편파적 해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해설을 그만두는 날까지 공부, 또 공부해야겠다’고.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성적표는 시청자들의 정확하고 냉정한 평가로 알게 된다.

중계가 있는 날, 중계하는 경기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꼭 준비가 덜 됐거나 갑자기 스케줄이 잡혀 해설을 하게 되는 날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나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배웠다. 방송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충대충, 적당히 하는 습관이 생겼던 것이다. 시청자들의 매서운 질책을 통해 나는 준비 없는 해설은 ‘독’이라는 교훈을 얻게 됐다.

항의라고 해서 반드시 다 욕설은 아니었다. 이따금 애교 섞인 귀여운 항의도 있었다. 때로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항의도 있었다.

83년 해태(현 KIA)와 MBC(현 LG)의 한국시리즈 때였다. 나는 매 중계 때마다 상투적으로 용호상박(龍虎相搏), 용쟁호투(龍爭虎鬪)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두 팀의 대결은 한마디로 용호상박이자 용쟁호투입니다.”

그런데 무심코 뱉은 말로 인해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해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호랑이처럼 맹렬하게 공세를 퍼부었다. “해태가 전기리그 우승팀이고 MBC가 후기리그 우승팀이니 순서는 호랑이가 먼저지요. 맞죠. 그리고 호랑이는 한국인의 상징인 반면 용은 중국인이 만든 상상의 동물 아닌가요, 그런데도 용호상박, 용쟁호투라는 게 말이 되나요. 다음부터는 호용상박, 호쟁용투로 바꾸시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경기가 끝나면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기록지를 왼편에 두고 1회부터 9회까지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검토와 반성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해설경력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만족스러운 해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야구 시작 전 3시간은 방송해설 준비를 위해 기록과 씨름하고, 경기 후 3시간은 해설에 대한 스트레스와 씨름한다. 그게 해설자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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