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귀스트 로댕, 그리고 다시 샤갈.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미술사의 거장들이 우리 곁에 왔다. 한국일보가 2004년부터 초대한 이름들이다.
한국일보는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2004년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한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시작으로 2006년 ‘위대한 세기 피카소’, 2007년 ‘빛의 화가 모네’, 2007, 2008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09년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2010년 ‘신의 손 로댕’과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차례로 마련했다.
이 전시들을 통해 해외 미술관에 가야만 접할 수 있던 작품들, 혹은 교과서와 책에서 보던 명화들이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특히 한국일보가 주최한 전시들은 회고전 형식을 택해 한 작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정 미술관에서 작품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걸작들을 선별해 오기 때문에 준비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그만큼 전시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2004년의 샤갈전은 국내 미술 전시사의 터닝포인트로 불린다. 샤갈의 작품 120점을 선보여 단일 작가 전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전시는 70만명의 관람객을 모아 당시까지 열린 국내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대가의 작품 몇 점에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섞은 그간의 국내 미술 전시와는 차원이 다른 명품 전시를 관람객들도 알아본 것이다. 또한 해외 여행 등을 통해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미술이 지닌 교육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던 사회적 분위기와 정확히 맞물린 결과이기도 했다.
수준 높은 미술 전시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확인된 샤갈전을 계기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대형 전시들이 줄을 이었다. 피카소전은 50여점이나 되는 유화를 포함해 판화 데생 도자기 등을 모두 갖춰 피카소라는 거인의 전모를 가늠하게 한 전시였고, 모네전은 모네 예술의 정수로 불리는 ‘수련’ 연작 8점을 전시해 큰 화제를 낳았다. 두 전시는 각각 40만, 45만명을 불러들였다.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샤갈전의 기록을 넘어선 것은 역시 반 고흐전이었다. ‘자화상’‘아이리스’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같은 반 고흐의 대표작들을 대거 가져와 전시 보험가액만 총 1조4,000억원에 달했다. 전 세계 어느 전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이 전시는 100일 동안 82만명이 관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뒤를 이은 르누아르전은 인상파의 보고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과 오랑주리미술관 등 세계 40여곳의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르누아르의 작품 98점을 포함, 118점을 선보인 국내 최초ㆍ최대 규모의 르누아르 회고전이었다. ‘시골 무도회’ ‘그네’ ‘피아노 치는 소녀들’ 등 일상적 삶의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61만5,000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 열린 조각 전시 사상 가장 많은 35만명이 관람한 로댕전은 회화에 비해 낯설게 느껴지던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깬 전시였다. ‘생각하는 사람’ ‘입맞춤’ 등 로댕의 걸작들이 모두 나온 이 전시는 특히 로댕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석고 원본들을 대거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전시는 이제 미술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일보의 전시를 보기 위해 덕수궁까지 길게 줄을 늘어선 풍경이 어느새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한국일보는 대중을 위한 교육적 가치가 높은 전시를 기획하는 데 가장 앞서 있는 매체”라며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기획을 통해 튼실하고 밀도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중과 전문가들로부터 각광받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미디어들이 단순히 뉴스나 정보를 전해 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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