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소천 지음ㆍ박성희 옮김
북스넛 발행ㆍ812쪽ㆍ3만3,000원
중국 최초의 서정시인 굴원(기원전 340~278)부터 중국 현대문학의 태두 루쉰(1881~1936)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문인 18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들을 통해 본 중국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을 헤집으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방대한 사료를 모아 사실 중심으로 썼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풍경과, 시대와 불화하며 누구보다 굳고 정하게 제 길을 걸었던 높고 외로운 삶을 기품 넘치는 문체로 짚어낸다. 시와 산문 등 그들이 남긴 글을 넉넉히 인용해 향기를 더했다. 저자 류소천은 중국의 역사학자다.
저자가 서문에 붙인 제목대로 그들의 "삶은 치열했고 글을 눈부셨다."중국에서 문인은 대개 정치가였다. 따라서 문인의 인생사는 곧 당대의 정치사였다. 그들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글을 읽고 썼다. 때론 황제의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고, 때론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어 영욕을 겪으며 온몸으로 시대를 건넜다.
초나라의 부재상까지 올랐던 굴원이 이상 정치를 펼칠 수 없게 되자 10년 유랑 끝에 멱라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이나,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한 뒤 그 고통을 장대한 역사서 <사기> 저술로 승화한 것은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싯퍼런 정신을 보여준다. 사기>
불운과 허무 끝에 달관과 통찰을 얻은 소동파, 온갖 기행으로 난세의 자유와 저항을 실천했던 죽림칠현의 영수 혜강, 유토피아를 꿈꾸며 가난을 맑은 삶의 좌표로 삼았던 도연명, 하룻밤 꿈처럼 사랑을 이야기하고 떠난 여성 시인 이청조, 조정에 나가 재주를 펼칠 수 없음을 유랑과 광기로 세월을 보낸 이백, 시대와 국가 개혁의 소명을 짊어지고 온몸을 불살랐던 왕안석과 루쉰, 뜨거운 인간애로 민중을 껴안았던 휴머니스트 이욱과 구양수, 조설근 등 한명 한명의 삶을 조명하는 저자의 눈길은 차분하고도 뜨겁다.
이 책은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오늘날 생태 위기와 견주어 도두 새기고, 900년 전 이청조의 삶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쓸쓸함을 읽고 위로한다. 그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숨쉬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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