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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새해에는 참된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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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새해에는 참된 희망을

입력
2010.12.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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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부터 저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동전 한 닢 주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은 스스로 해결하거나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동냥 그릇에 동전을 넣어주는 것은 그릇 주인의 처지를 개선하는데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직업적인 걸인을 만들 수도 있다고,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자선은 직업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교사는 학생을 잘 가르치고 의사는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선이라고 나 자신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하철 계단에 쪼그리고 앉은 걸인의 손바닥에 5천 원 권 지폐를 한 장 얹어도 보고, 지하철에서 잡상인이라 불리는 청년에게서 다용도 두건을 사기도 해보니 마음이 얼마나 즐겁고 가벼워지던지요. 없다 해도 내게는 크게 아쉽지 않은 지폐 한 장이 누구에게는 설렁탕 한 그릇이 되어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언 몸을 녹여주고,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잠시나마 데워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내 몸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그 돈은 내가 번 것이지만 나보다 필요한 사람이 쓰면 좋은 거라는 생각을 왜 조금 더 일찍 하지 못했을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 차가운 도시락 뚜껑에 따뜻한 보리차를 부어준 것을 아직까지 고마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현명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항상 힘이 될 수 없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나대신 누군가가 그렇게 해 줄 거라 믿기로 했습니다.

비만 오면 앞 숲에서 목청껏 울어대던 맹꽁이들이 지난해에는 잠잠했습니다. 맹꽁이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부터입니다. 올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려서 길고양이들에게도 혹독한 계절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환경부 장관이 서울에 와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이 도시에는 개가 보이지 않는군요. 개가 살 수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데 새해 같지 않다고들 합니다.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없고, 안보는 불안하고, 사건ㆍ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 보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IMF 구제금융 시절에 소액 기부가 오히려 늘었던 것을 떠올려 봅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야말로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실업률이 높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사회가 희망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굶주리는 길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망정 '길고양이가 불어나면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며 밥을 못 주게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사회, 개발과 발전을 핑계로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가 희망이 없는 사회가 아닐까요. 부를 쌓으려고 악착같이 살기보다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희망이 있는 새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서리 내린 빈 논 // 비오리들에게는 / 따뜻한 밥상이다// 낱알을 남김없이 거두지 않은 / 농부에게 고마워하며/ 늦은 아침을 먹고 있다// 악착같이 살지 않기로 한다'

-졸시(拙詩)

권정우 시인·충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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