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31일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사업자가 선정됨에 따라 방송계는 물론 미디어업계 전체가 '시계(視界) 0'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측은 종편의 출현이 긍정적 의미의 '미디어 빅뱅'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전문가들 및 관련 업계는 미디어 시장에 온갖 재앙을 몰고 올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종편 '승자의 저주' 겪나
미디어 전문가들이 광고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예측한 종편의 적정 사업자 수는 1개, 많아야 2개였다. 그러나 무려 4개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종편 시장은 시작부터 '레드 오션'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선정 후 3개월 내에 납입해야 하는 초기 자본금(3,000억원 이상) 조달부터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무더기 선정으로 종편 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당초 장밋빛 예측에만 기대 컨소시엄에 참여한 일부 주주들이 약속한 자본금 납입을 꺼리는 사태까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획대로 올 10~11월 본방송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진다.
초기 수익성 전망도 잿빛에 가깝다. 삼성증권의 공태현 애널리스트는 최근 "종편은 콘텐츠 품질의 검증 부족, 케이블 채널 및 다른 종편 채널 간의 차별화 어려움 등으로 인해 광고매체로서 가치가 낮다"며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 우려도 나온다. 초기 투자 부담이 큰 방송의 특성상, 조기 안착에 실패하면 머잖아 문닫는 사업자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채널 배정 등 특혜 논란 우려
종편 사업자들은 조기 안착을 위해 각종 특혜를 얻어내는 데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정책 입안 당시부터 기존 홈쇼핑 채널들이 꿰차고 있는 지상파 사이의 채널이나, 최대한 지상파에 가까운 소위 '황금채널' 배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케이블 SO들은 "사업권 침해"라고 반발했고, PP들도 불만을 토했다. 방통위 측은 31일 사업자 선정 발표에서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고민해보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지만, 최시중 위원장이 지난 10월 국회에서 행정지도를 통해 종편에 낮은 채널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 중임을 시사하는 등 특혜를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비대칭규제 등 특혜를 주는 데도 반대하고 있다. 종편 의무전송 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결과를 시장에 맡기겠다며 사업자를 여럿 선정한 마당에 1, 2개도 아니고 4개를 모두 우리더러 의무전송하라는 것은 무리"라며 "종편도 다른 사업자들과 똑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로서는 대놓고 특혜를 주기도 어렵지만 온갖 무리수를 둬가며 강행한 종편 사업이 실패하면 큰 부담을 안게 돼 이래저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광고ㆍ제작 과당경쟁 불 보듯
종편 사업자 무더기 선정에다, 방통위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지상파 다채널서비스(MMS)까지 도입되면 광고시장은 과당경쟁으로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국내 광고시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7%대. 방통위는 광고금지품목 해제 등을 통해 2015년까지 GDP의 1%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지만 아직은 '기대'일 뿐이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당분간은 사업자들끼리 한정된 광고자원을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면서 "이렇게 되면 콘텐츠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체 제작보다는 싼값에 해외 콘텐츠를 들여오는 데 열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을 양손에 쥔 종편 사업자들이 광고 유치를 위해 보도를 악용하는 상황도 우려된다.
또한 지상파도 대부분 외주 제작하는 드라마, 예능 등 분야에서 종편과의 경쟁이 벌어지면 제작비 폭등, 스타급 연예인들의 몸값 부풀리기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전국방송인 종편의 무더기 출현으로 지역 방송사들이 고사 위기에 놓일 것이란 우려도 있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광고시장뿐 아니라 미디어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게임의 규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희정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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