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아비토 지음ㆍ임경택 옮김
일조각 발행ㆍ252쪽ㆍ1만6,000원
한국인들을 관찰한 일본인들의 기록을 접하게 될 때는 어쩐지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일제강점기 많은 일본인 학자들이 의학, 체질인류학 등 학문의 이름으로 한국인들을 관찰하고 조사한 뒤 이를 식민 통치 정당화의 근거로 삼았던 사실 때문이다. 많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처럼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문명 일본과 대비되는 전근대적 야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록했다.
여기 한국인들을 관찰한 또 한 명의 일본인 인류학자가 있다. 이토 아비토(伊藤亞人ㆍ67) 도쿄대 명예교수다. 2006년 정년퇴임한 뒤 지금은 와세다대 아세아연구기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토 교수가 한국에 관심을 돌린 때는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인 1960년대 말이다. 그는 이후 40여년 동안 서울, 제주, 진도, 안동 등을 현지 답사하며 한국문화를 연구해왔다. 이토 교수가 정년퇴임을 기념해 펴낸 <그리운 한국마을> 은 초보 인류학자로서 한국인들의 삶 속으로 들아가기 위해 분투하던 1970년대 초를 돌아보는 회상기다. 그리운>
그는 1972년과 73년 전남 진도와 경북 안동이라는 두 이질적인 지역을 연구 대상지로 삼아 각 마을에 서너달씩 머물며 마을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다. 당시는 전국 농어촌이 근대화 광풍에 휩싸여있던 시기로 민속문화의 본향이라할 만한 진도와 양반문화의 종가라 할 안동은 시대 변화의 분기점에 서 있던 당시 흥미로운 연구 대상지였다. 한국과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일본의 연구자로서, 저자는 자신의 선배 연구자들이 받았던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농촌의 빈곤, 민속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비판인데 그는 이를 회피하지 않는다. 허름한 농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 민간신앙과 결합된 지방 불교 등을 기록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왜 그런 사진만 찍는 거야?"라는 시선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사진을 찍어두어야만 하는 게 아닌가?"하고 반문하면서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낡은 앨범을 들춰보듯 그 시절의 향촌 풍경과 그가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주된 정조는 그리움이다. 예컨대 진도대교가 놓인 1984년 이전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진도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는 왁자지껄한 화투판이 벌어지고 입심 좋은 약장사가 회충약을 팔던 객실 풍경을 이렇게 기억한다. "이와 같은 순항선의 풍정은 다리가 놓이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로 건너다 보니 무심코 있으면 언제 섬으로 건너갔는지 알 수 없는 일조차 있습니다."
당시 반공 분위기 때문에 겪었던 웃지 못할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지방의 여관이나 다방에는 '자주 보지 못하던 사람으로서 이상한 것을 물어보며 돌아다니는 사람, 색다른 복장을 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물건 값을 잘 모르는 사람'등을 의심하라는 벽보가 붙어있었는데, 이 모든 사항이 해당됐던 저자는 간첩 혐의로 네 번씩이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누이들, 절구공이로 두더지를 잡는 농촌 여성, 땔감을 한 짐 지고 걸어가는 중학생 등 저자가 찍은 140여장의 사진들은 넉넉하지 못했으나 정겨웠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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