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언론이 만들어낸 축구 용어 가운데 ‘판타지스타(Fantasista)’라는 것이 있다. 볼을 잡는 것 만으로도 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출중한 능력의 슈퍼스타를 지칭한다.
한국 축구의 차세대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손흥민(19ㆍ함부르크)은 ‘판타지스타’가 되기에 부족함 없는 실력과 스타성을 지니고 있다. 손흥민은 2010년 축구 대표팀의 마지막 A매치였던 시리아와의 친선경기(1-0)에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비록 골과 도움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기대 이상의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최전방 공격수와 왼쪽 날개로 기용된 그는 45분간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조 감독의 눈도장을 다시 한번 확실히 했다.
조 감독은 오는 8일 개막되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손흥민을 다양한 카드로 중용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은 축구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캐릭터다. 183cm 74kg의 균형 잡힌 체격에 우윳빛 피부의 곱상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길을 한번에 사로잡을 정도의 뛰어난 기술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성장 과정도 한편의 만화같다.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춘천 FC 감독은 명지대 시절 최진한 경남 감독과 팀의 주포로 활약하며 전국 무대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아킬레스건 파열의 부상으로 23세의 젊은 나이에 축구화를 벗었다.
춘천으로 낙향해 유소년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찾은 손 감독은 차남 손흥민을 독특한 방법으로 지도했다. 손흥민은 원주 육민관중 3학년 때야 ‘제도권 축구’에 데뷔했다. 15세가 될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철저히 기본기를 닦았다. 축구 명문 동북고에 입학했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을 노리고 미련 없이 자퇴했다. 200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월드컵(17세 이하)에서 3골을 터트리며 8강 진출을 이끌었고, 함부르크 SV에 입단하며 유럽 진출의 꿈을 이뤘다.
18세의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에 데뷔해 3골을 터트리며 현지 언론으로부터 ‘슈퍼 탤런트(Super Talent)’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 감독이 자신의 플레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날 손흥민은 2골을 작렬하며 펄펄 날았다. 손흥민의 성장 과정은 드라마틱한 요소로 점철돼 있다.
손흥민의 미래를 더욱 밝히는 것은 나이답지 않은 신중함과 겸손함이다. 10대 스포츠 스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당돌함과는 거리가 멀다. 늘 자신을 낮추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손흥민은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대표팀에 선발되는 행운을 누려 영광스럽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새해에는 더욱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신묘년을 맞는 각오를 밝혔다. 아랍에미리트 전지훈련에서 박지성의 룸 메이트가 된 그는“항상 성실하고 부지런히 맡은 바 임무를 다 해내서 팀에 공헌하는 박지성 선배처럼 되고 싶다. 전지훈련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롤 모델’과 동거하는 소감을 밝혔다. 손흥민의 신묘년 목표는 ‘경험 쌓기’다. 소속팀에서 한 경기라도 더 출전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재도약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한 걸음이라도 더 뛰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터트린 차범근(58) 전 수원 감독과 자주 비교된다. 차 감독은1972년 크메르와의 태국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4-1)에서 추가골을 터트리며 아시안컵 최연소 득점 기록(18세 11개월)을 작성했다. 손흥민이 카타르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면 차 감독의 기록을 39년 만에 경신하게 된다. ‘제 2의 차붐’을 노리고 있는 손흥민이 카타르에서 한국 축구사를 새롭게 장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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