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필립스 지음ㆍ김선형 옮김
현대문학 발행ㆍ506쪽ㆍ1만4,000원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하버드대 출신 미국 소설가 아서 필립스(42ㆍ사진)의 장편소설로, 2009년 출간돼 그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언론에서 호평을 받았다.
40대 중반의 광고 감독 줄리언과 아일랜드 출신의 22세 여가수 케이트의 색다른 연애담이다. 어린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부인과 별거 중인 줄리언은 동네 술집에서 공연하던 케이트를 보자마자 연정을 느낀다. 그날 줄리언은 술김에 술잔 받침에다가 즉흥적으로 떠오른 조언을 적고, 종업원을 통해 그것을 전달받은 케이트 역시 “(내) 결점을 모조리 꿰뚫어보는 자문을 해주는” 익명의 신사에게 호감을 느낀다.
일면식도 없는 상대를 향한 이들의 구애는 서로 대면할 기회를 한없이 유예하면서 팽팽하게 진행된다. 줄리언은 케이트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 그녀에게 선물하고, 케이트는 ‘열쇠는 매트 밑에 있어요’라는 제목의 신곡을 은밀한 초대장처럼 줄리언에게 보낸다. 때로는 젊은 연예인의 뒤를 쫓아다니는 중년의 스토커 같고, 때로는 매력적인 중년 남성을 유혹하는 잔망한 롤리타 같은 두 사람의 심리전과 연애담은 시종 독자에게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케이트를 짝사랑하는 밴드 동료가 이들의 연애를 방해하려 벌이는 공작과, 별거 중인 동생 부부를 어떻게든 연결시켜 주려고 애쓰는 줄리언의 철부지 형의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숨바꼭질 같은 연애가 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의 불안이 투영된 것임을 밀도 높게 묘사함으로써 얄팍한 대중소설의 경지를 뛰어넘는다. 줄리언은 재결합을 원하는 아내의 진심을 잘 알면서도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하고, 케이트 또한 인기가 치솟으면서 무명 시절 품고 있던 자기 자신과 음악에 대한 확신이 점점 흔들린다. 각자 스스로 이겨내야 할 상처와 불안을 지닌 두 사람의 연애는 그러므로 서로에게 일시적인 위로가 될 수 있을 뿐임을, 소설은 인상적인 파국을 통해 담담히 보여준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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