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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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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의 이름으로

입력
2010.12.3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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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속도라는 것은 잊고 늘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처럼 살겠습니다.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도 너무 빠른 속도가 되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직립의 두 발을 가졌기에 호모 사피엔스의 속도는 욕망이 되어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육상 100m 세계신기록이 9.58초인 것을 아시는지요? 사람이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그냥 나무처럼 한 자리에 붙박여 살고 싶습니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도 어린 자식을 기르며, 말씀을 빚어내고, 외로울 땐 빈 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의 이름으로 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너무 입이 많습니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참혹한 전쟁이 터집니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그 많은 잎들을 달고도 침묵하는 나무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이웃에게 꽃을 주고 열매를 주는 나무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그대의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그동안 세상의 속도에 맞춰 달려가느라 무심했기에 새해에는 그대의 나무가 되어 서있겠습니다. 그대도 저의 나무가 되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무와 나무가 만나 이루는 숲처럼, 우리란 이름의 숲에서 나무처럼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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