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별것 아닌 걸 선물이라고 전달한 것 뿐인데 좋은 일을 하긴요. 그냥 다 내 자식 같은데, 돈을 기부할 형편이 안 되니 목도리를 짠 거에요.”
1년간 손수 짠 목도리와 털모자를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한 환경미화원 고덕자(61)씨는 “겨우 작은 마음을 선물하고 생색내는 것은 맘이 편치 않다”며 수줍어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광고기획사 비전크리에이티브 사무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고씨는 올 봄부터 최근까지 틈틈이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털 목도리를 짰다. 그 목도리를 회사 직원들이 지난달 10일 “좋은 일에 써달라”며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에 보내면서 고씨의 선행이 알려진 것.
고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어둠이 짙게 드린 거리로 나와 회사로 종종걸음을 친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말끔히 회사 건물을 쓸고 닦던 고씨는 올해 초 한 사무실에 걸린 편지를 보고 작은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 회사가 보낸 후원금을 받은 아이들이 보낸 감사편지였다. ‘보내주신 돈으로 목도리를 샀다’는 내용을 본 고씨는 “80만원 월급 받는 형편에 후원금을 보내긴 어렵더라도, 직접 목도리를 떠서 보내줘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날부터 고씨는 퇴근길 버스를 타지 않고, 차비를 꼬박꼬박 모아 털실 살 돈을 마련했다. 버스로 일곱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라 60대의 고씨 걸음으로는 1시간도 더 걸린다. 하지만 고씨는 “목도리를 받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남편과 장성한 아들, 딸이 말리기도 했지만 고씨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관절이 안 좋아서 가족들이 그만 좀 걸어오라고 했어요. 딸이 차라리 털실 값을 줄 테니 버스를 타라고도 했고. 그런데 전 한번 결심했으니 꼭 제가 모은 돈으로 선물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애면글면 모은 쌈짓돈으로 사들인 털실이 1년새 30여 만 원어치. 1년간 손수 짠 털목도리가 22개, 모자는 6개나 됐다.
고씨가 정성스레 짠 모자와 목도리는 11월 중순 월드비전 복지시설의 아동들에게 전해졌다. 아이들은 감사편지와 목도리를 두른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다. 편지에는 “정말 예뻐요. 이번 겨울은 목도리 덕분에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접 만든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보통 받은 선물보다 백배 천배 더 기분이 좋고 정성이 느껴져요”등의 내용이 담겼다.
고씨는 내년에도 목도리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다. 조끼를 만들어볼 계획도 세웠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저를 보고 어떤 분이 ‘저런 아줌마도 좋은 일을 하는데 나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저에겐 참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아요.”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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