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만큼 귀하고 보존가치가 높다는 말일 게다. 이번에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약수는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오색약수, 홍천군 내면 광원리의 삼봉약수,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의 개인약수다. 문화재청은 11월 30일 이들 약수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고, 한달 간의 의견수렴 기간을 보낸 뒤 29일 문화재심의위원회를 통해 최종 지정키로 했다. 깊은 산속의 작은 샘물이 드디어 명예로운 훈장을 얻게 된 것이다.
약수는 북한에도 11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민족과 함께해온 유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지정된 사례가 없었다. 문화재청은 “보존가치가 있는 전국 30개소 약수 중 미네랄 등 함유량이 많은 약수를 선정해 수질, 역사, 설화, 경관 등이 우수한 약수를 선별, 지정함으로써 자연, 문화적 가치를 보존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들 세 약수를 포함해 물 좋다는 약수에선 비릿한 피맛이 나고 탄산가스가 피어 오른다. 그 이질적인 맛에 꺼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약수가 숲을 청청하게 하는 산의 혈액이고 산의 정기라고 생각한다면 한 방울도 버리기 아까울 것이다. 천연기념물에 오른 그 영광의 약수터를 찾아 나섰다. 겨울의 말간 기운을 몸 속 깊이 적시는 걸음이다.
개인약수
문화재청은 개인약수가 숲속에 있어 약수터의 원래 모습이 잘 남아있는 등 자연성이 가장 우수하고 수질 또한 다른 우수 약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정했다. 해발 1,000m 높이에 있는 개인약수는 하늘 위 샘이다. 가는 길도 험난하다. 아찔함을 각오한 채 굽이굽이 산길을 차로 올라야 한다. 개인약수산장에 차를 대고 1.4km 거리를 계곡을 따라 걷는다. 약수터로 올라가는 산행이 몸엔 약수만큼이나 보약이다. 개인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한겨울인데도 풍성하다. 물소리만 들으면 계곡은 여름이다. 그 이끼계곡서 뿜어져 나오는 청정샘물이 개인약수다.
1891년 함경북도의 포수 출신인 지덕삼이란 사람이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약수 주변에는 수령 100~200년의 잣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데다 약수터 둘레에는 방문객들이 무병장수를 빌며 쌓아놓은 많은 돌탑이 독특한 풍취를 자아낸다.
가뿐 숨을 몰아 쉬고 벌겋게 색이 밴 약수터에서 물 한바가지를 떠서 입에 넣는다. 이렇게 상쾌할 수가. 톡 쏘는 맛이 탁월하다. 입안에서 공기방울이 톡톡 터져나간다. 잘 숙성된 샴페인에서 느낄 수 있는 버블이 입천장을 간질인다. 다른 약수에 비해 비린맛이 아주 약하다. 그래서인지 물에선 왠지 상쾌한 향이 나는 느낌이다. 주변을 뒤덮은 녹색의 이끼가 뿜어내는 청정의 기운 탓일까.
삼봉약수
삼봉약수는 홍천군 내면 광원리 가칠봉(1,240m) 아래에 있다. 약수는 가칠봉 계곡의 삼봉약수휴양림 안에 들어서 있다. 휴양림 입구에서 약수가 있는 곳까지 4㎞ 가까이 되는 들머리 숲길이 아름답다. 약수가 나오는 곳은 가칠봉의 좌우양측 계곡이 만나는 지점 산장 앞의 좌측 개울가이다. 물길과 어우러진 약수터의 풍경이 아늑하다. 가칠봉·응복산·사삼봉 세 봉우리에 둘러싸여 ‘삼봉’으로 불리는데, 약수물이 나오는 곳 또한 샘이 세 곳이다. 한데 모여있는데도 각 구멍마다 물 맛이 다르다. 1500년대 조선 초기에 발견된 약수로 그 역사가 오래다.
오색약수
오색약수는 오색천 계곡물 한가운데 있는 넓은 암반에서 솟는다.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주전골에서 흘러내리는 오색천의 하천 한가운데에 있다. 오색약수는 삼봉약수가 발견된 때와 비슷한 1500년 무렵 인근 사찰의 스님이 반석 위에서 솟아나는 샘을 발견하고 무심히 한 모금 마셨는데 이것이 약수였다고 전해진다. 양양군지 기록에는 당시 성국사 후원에는 오색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샘 이름을 오색약수라는 칭하게 됐으며 탄산수로 위장병과 신경쇠약, 피부병, 신경통에 좋고 특히 메밀꽃이 피는 가을에 효력이 좋다는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오색약수는 오색관광지를 대표해온 주인공이다. 인근에 오색온천이 생기면서 약수가 급감했다가 2006년 한계령이 박살났던 폭우 때는 하천이 떠내려온 토사와 바위로 메워져 약수터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주민들이 약수터를 복구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요즘도 찾는 이들에 비해 물의 양은 매우 적다. 작은 물구멍에 대고 플라스틱 바가지를 박박 긁어대봤자 떠진 물은 새오줌 정도에 불과하다.
인제ㆍ홍천ㆍ양양=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쌉쌀~ 알싸~ 톡톡~, 약수의 맛도 가지가지
이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개인, 삼봉, 오색약수 세곳이지만 이들 못지 않는 맛과 효험을 가진 약수들도 많다.
우선 추천할 만한 곳이 강원 인제군 방태산 자락의 방동약수다. 방태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조경동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만나는 약수다. 주차장에서 약수터까지는 아주 가깝다. 좁은 계곡을 넘어갈 수 있는 나무다리와 약수터 옆의 정자에 눈이 쌓여있을 때는 겨울의 약수터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개인약수보다 더 찾아가기 힘든 약수터는 강원 양양군 미천골에 있는 불바라기 약수다. 미천골휴양림의 차가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차단막에서부터 4.8km를 걸어가야 한다. 길은 산길이 아닌 임도라 경사가 별로 없어 편하다. 주변의 원시림이 장관이다. 임도에서 계곡으로 들어와 300m쯤 오르면 물길 위로 떨어지는 폭포 2개를 만난다. 약수는 왼쪽 폭포 바위 벽에서 흘러나온다. 약수가 나오는 구멍 주변이 온통 벌겋게 물들어 불꽃이 이는 해바라기를 닮았다. 그 모습에서 불바라기란 이름을 유추해본다. 미천골휴양림 들어가는 길에선 선림원지를 만난다. 신라 법흥왕때 순응법사가 세웠다는 대찰이다. 한때 1,0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머물던 곳. 수도승들을 위해 쌀 씻은 물이 하얗게 흘러 붙여진 이름이 지금의 미천(米川)이다. 대홍수 때 산사태로 매몰되면서 폐사됐다고 한다. 백두대간 속살에서 불바라기 약수를 처음 발견한 이들은 화전민들이라고 한다. 철분 및 탄산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위장병과 피부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믿어 이곳에 천막을 치고 약수를 받아먹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구룡령 바로 밑의 마을인 양양군 갈천리에 있는 갈천약수도 명약수다. 갈천마을로 들어가 1.2㎞를 걸으면 약수터가 있다.
인제군의 남전약수는 인제-양평을 잇는 44번 국도 대로변에 있다. 예부터 이곳은 쪽풀이 많이 나 쪽밭골로 불리었고 약수도 쪽밭골 약수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오대산 자락 방아다리 약수는 조선 숙종 때 발견된 유서 깊은 약수다. 주변에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산림욕을 곁들일 수 있다. 특히 입구에서 약수터로 가는 약 1km의 전나무 숲길은 약수를 마시기도 전에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길이다. 방아다리약수에서 고갯길을 넘어 속사 쪽으로 내려가면 방아다리약수 못지않은 맛을 내는 신약수가 있다.
정선군 화암팔경중 제1경인 화암약수는 그 풍경이 멋드러진다. 그림 같은 바위와 숲, 내가 약수를 감싸고 있다. 풍경으로만 치면 전국 제1의 약수터다.
한계령에서 오색으로 내려오다 정상 바로 밑에서 현리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필례약수를 만난다. 소설가 이순원씨의 소설 의 무대였던 곳으로 이후 은비령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이들 약수의 공통점은 강원도에서도 아주 산 깊은 곳에서만 나는 약수라는 점이다. 산 깊기만 따진다면 경북 봉화도 양보할 수 없다. 오전 두내 다덕 등 3개의 유명 약수를 가지고 있다. 영주 부석사와 가까운 오전약수는 일명 쑥밭 약수터. 조선시대 한 보부상에 의해 발견돼 알려지기 시작했다. 탄산 성분의 톡 쏘는 맛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좋다. 1985년부터 관광지로 개발됐다. 한겨울 눈덮인 약수터 주변은 일본의 산골 온천에 온듯한 아늑한 분위기다.
다덕, 두내약수도 오전 못지않은 물맛을 자랑한다. 봉화읍에서 가까운 다덕약수는 옛날 많은 이들이 이 약수를 먹고 덕을 보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곳. 오전 약수에서 6㎞ 떨어진 두내약수는 아직 덜 알려져 한가해서 좋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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