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빙상장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한동안 일어날 수도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동안 16년간 발목을 잡은 올림픽 불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가 보다"했다.
2월18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의 올림픽 오벌. 이규혁(32)은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9위에 그쳤다. 이틀 전 500m 15위에 이어 올림픽 메달은 이번에도 이규혁을 지나쳤다. 빙속 최강자로 군림하면서도 올림픽과는 지독스럽게 인연이 없었다. 이규혁은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선 16세 때부터 5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모두가 끝이라고 했지만, 이규혁은 다시 부츠 끈을 조였다. 모두가 어려울 거라 했지만, 이규혁은 올림픽 후 맞은 2010~11시즌에도 최강자다. 그는 21일 끝난 전국남녀 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무려 10연패. 강산이 변하고 올림픽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아도 이규혁은 기어이 정상을 지켰다.
밴쿠버올림픽에서의 쓰라린 좌절부터 악으로 캐낸 희망까지. 저무는 2010년은 이규혁에게 그래서 더 특별하다. 30일 이규혁이 밴쿠버올림픽 그 후를 들려줬다.
밴쿠버 후유증은 진행형
이규혁은 경기를 치르고 이틀 뒤 기자회견장에서 결국 눈물을 쏟았다. "어느 누구와 함께 있어도 계속 눈물이 났다.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것조차 이제는 나한테 욕심인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기자회견장을 메운 현지 교민들은 물론이고, 언론을 통해 접한 국민도 함께 울었다.
이규혁은 당시를 떠올리며 "준비를 많이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와중에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기뻤지만 또 아쉬운, 여러 가지 기분이 들었다"면서 "아직까지도 올림픽 얘기를 하면 밝은 모습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뭔가 계기를 잡아서 극복되는 후유증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매 순간 훈련 때나 경기 때나 문득문득 올림픽 생각이 나요. '지금 내가 어떻게 선수생활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인 거죠."
다시 왕좌(王座)로
"실패는 올림픽 딱 한 대회뿐이잖아요. 시즌을 다시 준비했을 때도 진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전국남녀 스프린트선수권대회 우승을 두고 이규혁이 한 말이다.
21일 우승으로 이규혁은 10연패의 독보적인 기록을 썼다. 특히 밴쿠버올림픽 후 '끝난 것 아니냐'는 시선을 뒤로 하고 올린 성적이라 더욱 빛났다. 이규혁은 "2007년 한창 좋았을 때의 내 기록을 깨면서 10연패를 달성해 더 의미가 있었다"면서 "체력은 아무래도 10ㆍ20대 때보다야 달리지만, 후배들에게 뒤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괜히 비교되면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까 봐 체력 테스트는 일부러 같이 안 한다"며 웃었다.
이규혁은 밴쿠버올림픽 후 실의에 젖을 틈도 없이 쳇바퀴를 돌렸다. 언제나처럼 바로 대표팀에 합류했고, 전지훈련에다 각종 대회 출전으로 바쁘게 살았다. 이규혁은 "돌아보면 올림픽 후 생활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말하자면 상황이 재미나게 돌아가 귀국 후에 정말로 많은 분들의 격려가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밴쿠버올림픽 500m에서 정빙 차량 고장으로 리듬이 깨졌고, 1,000m에서는 600m까지 선두 기록으로 질주하다 막판 400m에서 무너진 이규혁. 혼신을 다하고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그는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이규혁은 네티즌들이 주는 '국민감동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은퇴를 고민하던 이규혁은 다시 일어섰고, 이름 석자에 걸맞게 왕좌에 앉았다.
소치올림픽 도전은 반반
이규혁은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에서 1,500m 3연패에 도전한다. 주종목인 1,000m는 종목 자체가 제외됐고, 500m 대표선발전서는 고배를 들었다.
"500m에서 떨어지니까 곧바로 체력이나 나이로 봐도 버거운 게 아닌가 하는 주위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원래 다 그런 거죠, 뭐. 그래서 한번 더 올림픽에 나간다면 지금처럼 주위 신경 안 쓰고 올림픽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규혁은 "올림픽 시즌에는 다른 대회 성적은 조절해 가면서 올림픽에만 신경 썼어야 한다. 이번 시즌에는 진짜 원하는 대회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절하고 있다"면서 "이번 시즌 그래프가 올림픽 무렵에 더 좋아질 수 있었던 그래프다. 그래서 더 2014년 올림픽에 욕심이 있다"고 했다. 이규혁은 그러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2014년이면 그의 나이도 30대 중반을 훌쩍 넘는다. 자신감을 내비치다가도 이내 생각이 많아지는 이규혁이다. "나이도 있고, 밴쿠버에서 정말로 치밀하게 준비했는데도 실패한 거잖아요. 아무래도 두려움이 있죠." 그는 입맛을 다셨다.
아들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빙상장을 찾는 어머니 이인숙(55)씨도 밴쿠버올림픽 직후에는 안쓰러워 "그만하자"고 했다가 지금은 "1년 赴?갔다"면서 소치올림픽에 기대를 건다. 국민생활체육회 스케이팅연합회장인 이씨는 피겨 국가대표를 지낸 한국피겨의 산증인이다.
이규혁은 1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이어 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선다. 동계아시안게임 3연패보다는 스프린트선수권 통산 4번째 우승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새해 장도에 앞서 미니홈피에 '아직 지는 건 익숙하지 못하다'고 쓴 이규혁. 그는 "이제 이기고 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했다. "다시 시즌을 시작해보니 운동선수라면 항상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지는 게 익숙해지면 은퇴해야죠."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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