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낚시'
소화전 문을 열었다. 긴 호스가 뱀처럼 기다란 몸을 구부려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마치 뱀이 알을 품듯 작은 택배 상자가 안겨 있었다. 상자를 꺼내어 흔들었다. 가벼웠고, 둔탁한 소리만 들렸다. 센서등의 불이 꺼졌다. 손을 흔들었다. 다시 불이 켜졌다. 상자 겉면에 쓰여 있는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다. 내 것이 맞았다. 취급 주의. 깨진 유리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에어캡 포장지가 물건을 깨지지 않게 잘 감싸고 있을 것이다.
택배기사는 소화전 안에 물건을 넣어놓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택배가 올 때마다 나는 집 안에 있었지만 현관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소화전은 어느새 택배기사와 나와의 은밀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경비실에 맡겨놓았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것이 귀찮았는지 기사는 소화전을 자주 이용했다. 상자도 그리 크지 않았고, 경비실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소화전은 하루에 한 번씩 상자를 품었다. 상자에는 내 몸을 가려줄 긴소매 옷들이 담겨 있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것들이다. 그 외에 군것질거리나 다른 물품도 상자에 담겨온다. 이번에 온 것은 고급 낚시도구였다. 상자는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마치 테트리스 블록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처럼 상자는 늘어만 갔다. 상자를 맨 위에 놓자 쌓인 것들이 휘청거렸다. 저러다 천장까지 닿아, 쌓여 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핸드폰이 진동한다. 연체도서 반납요청 문자다. 반납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지났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은 벽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놓은 회원카드는 다량의 책들을 대출하는 데 유용했다.
타이핑 아르바이트는 잡지 이외에도 출판사에서 맡기는 책들도 있었다. 이번에 맡은 일은 낚시잡지 기사 타이핑과 점자책을 만들기 위한 도서 입력이다. 도서는 소설책이다. 주인공은 안면실인증을 앓고 있는 여자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자는 대신 습관이나 목소리 등을 통해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챈다. 그 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여자를 떠나고, 결국 여자는 자신의 얼굴마저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장면들을 어떻게 떠올릴까 생각하며 타이핑을 해나간다. 타이핑된 글자는 점역(點譯)과정을 거쳐 점자로 옮겨질 것이다. 타이핑할 때는, 책을 읽는다기보다 글자를 옮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타자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진다. 손가락을 이용해 글자들을 낚는 듯한 기분으로 낚시잡지 기사를 자판으로 두드린다.
타이핑 아르바이트 이외에 하는 일이라곤 실내낚시터에 가는 일과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데에는 책만 한 게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책의 두께나 글자들의 양을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만큼의 시간을 모두 붙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반납일자를 놓치곤 했다. 한 번 놓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연체일수는, 하얀 화면에 글자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끝없이 늘어만 갔다. 10분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가는 길은 공사 중이었고,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 먼지들이 모두 내 뼈 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뼈는 누가 봐도 보기 흉할 정도였다. 먼지들이 관절 사이로 들러붙어, 몸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질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비쩍 말랐던 나를 보고 사람들은 '생선 가시'라며 놀려댔다. 곁에 가면 튀어나온 뼈에 찔리겠다며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항상 초점 없이 멍하게 뜨고 있는 눈을 보고는 붕어눈이라며 입을 뻐끔거려보라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사람들은 내게 미끼를 던졌다. 저수지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나는 그 미끼들을 물었다. 그들은 미끼가 가시에 잘 걸린다며 재미있어 했다. 미끼들은 맛이 없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내 마른 몸의 뼈는 더 도드라졌다. 나는 살을 찌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먹었다. 냉장고에는 각종 군것질거리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닫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는 살이 붙지 않았다. 그나마 붙어 있던 살들도 점점 떨어져 나갔다. 뼈는 앙상하게 드러나, 관절이 있는 부분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내 소원은 헌혈을 하는 것이었다. 체중미달인 탓에, 헌혈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움직임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차라리 생선처럼 지느러미라도 있다면, 둔한 내 행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는 않을까. 나는 거울을 보며 훤히 드러나 있는 갈비뼈들을 매만졌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알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여러 대의 시계를 방 안에 두었다. 일정에 맞추어 각각 알람 시간을 맞춰놓았다. 굼뜨게 행동하는 바람에 그동안 놓친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둔한 움직임은 일상의 속도를 늦추기도 했지만 생각의 꼬리마저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알람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한글 파일을 열었다. 마감을 넘기면 잘리기 십상이다. 낚싯대를 잡고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물고기가 걸렸을 때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나는 알람시계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다. 낚싯대 끝에는 물고기 대신 컴퓨터 자판들이 달려 있다.
자판들을 손끝으로 누를 때마다 흰 바탕에 글자들이 꼬물꼬물 생겨난다. 타자치는 것만큼이나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면. 나는 물고기들이 입에 물고 있는 상품들을 생각한다. 목표는 냉장고다. 고장 난 냉장고는 잡음을 내지 않고 조용했다. 문을 열면 냉장고 안은 어두웠다. 빛이 없는 곳에 있는 반찬거리들은 미지근했다. 깜깜한 밤에 형광등 역할을 했던 냉장고는 서랍장이 되어갔다. 나는 쌓여가는 박스들과 책들을 냉장고 안에 넣기 시작했다. 끼니는 배달시키거나 햇반을 먹었다. 그것도 귀찮으면 빵이나 군것질거리들로 배를 채웠다. 부패된 반찬들은 버리면 그만이었다. 반찬은 냉장보관하지 않아도 될 참치 캔이나 3분 카레 등으로 대신했다.
바다거북이 고개를 길게 내밀고 모래 위에 누워 있다. 거북이의 머리와 팔, 다리는 피부가 갈라져 있어 메마른 느낌을 준다. 거북이 등 껍데기는 단단해 보인다. 거북이의 눈동자는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초점 없는 검은 눈동자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올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고 타이핑을 끝냈다. 이번 달 낚시잡지에서는 특집으로 거북이를 다루었다. 동해에서 바다낚시 하던 사람들이 바다거북을 건져 올렸다는 뉴스보도에서 따온 기사였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바다거북의 정수리에는 붉은색으로 육각형의 등 껍데기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낚싯줄을 입에 문 채 검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등 껍데기 안으로 목을 잔뜩 움츠렸던 거북이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최대한 길게 내밀었다. 거북이는 무슨 생각으로 낚싯줄을 물었을까. 눈동자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 거북이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알람 소리가 또 울렸다. 마감을 알리는 소리였다. 급히 문서 저장을 누르고, 파일을 첨부해 메일을 보냈다. 알람 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또 멍하니 잡지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메일을 보낸 후 알람시계 버튼을 누르고 옷을 주워 입었다. 나는 사계절 모두 긴소매 옷을 입는다.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누군가가 내 몸과 뼈를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겨울이다.
낚시잡지를 보고 실내낚시터에 대해서 알게 됐다. 처음 왔을 때 물고기들 하나하나에 달려 있는 번호표를 보고는 물고기의 마릿수를 세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품을 추첨하기 위한 번호였다. 행운이 깃든 번호에는 엄청난 경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물고기들이 쌀 한 가마니, 홍삼 세트, 스팀 청소기 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실내낚시터는 냉장고 같다. 실내는 밤처럼 어두웠고, 물 위로 조명이 닿아 흔들렸다. 물 안에 있는 물고기들은 낚싯대에 잡힌다고 해도 또다시 물속에 들어간다. 식탁 위에 놓였다 다시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는 반찬통처럼.
경품 실내낚시터에는 정해진 낚시꾼들이 매일 온다. 낚시터로 들어오는 입구 계단 벽면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선물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는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저 사진 속에, 자신들이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겠지. 어두운 실내에서, 수족관 주변으로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헤엄치지 않는 물고기 같다.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물고기.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이곳에 앉아 있다가 입질이 올라와 짜릿한 손맛을 느낄 때면, 마치 알람 소리를 듣는 기분이 든다. 내게 시간을 일깨워주는 것 같은, 한 번도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시간을 내 손에 쥐어주는 듯한 그런 기분 말이다.
사람들은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낚시질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속에 감추어진 말을 듣는다. 손맛 뒤에 남는 여운이 어쩌면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냉장고를 뽑을 때까지만 실내낚시터에 드나들기로 했다. 깜깜한 밤에 냉장고 문을 열면 안에서 환한 빛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 전까지는 실내낚시터의 은은한 조명으로 빛을 대신 쬐고 있다.
실내낚시는 야외낚시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볼 수도 있다. 번호표를 유심히 보며 내가 원하는 물고기를 유인해볼 수도 있다. 지느러미, 꼬리를 흔드는 잉어와 붕어들은 앞으로 나아가며 서로 부딪친다. 저것들 중에, 거북이는 없는지 궁금해졌다. 거북이는 어떤 먹이를 좋아할까.
옆에 앉은 남자는 핸드폰 액정을 보면서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있다. 터치폰인지 손가락 끝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힐끔 보니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다. 천천히 내려오는 블록들은 층을 이루며 쌓인다. 잘못 놓인 블록들 사이에는 빈 공간이 만들어진다. 블록들이 점점 빠른 속도로 내려와 빈 공간이 늘어난다. 결국 천장까지 쌓이는 블록들.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게임에 열중하던 남자는 입질이 왔는지 갑자기 크게 소리친다. 낚싯줄 끝에 매달려 있는 물고기는 수면 위로 나오자 몸을 힘차게 파닥거린다. 주인이 그에게 다가가서 뜰채에 물고기를 담아 번호표를 확인한다. 번호를 보고 경품코너에 가서 상자를 들고 나온다. 식기건조기다. 남자는, 식기건조기는 집에 있다며 압력밥솥으로 바꿔줄 수는 없겠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한 명씩 사정을 봐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그러면 돈 주고 압력밥솥을 사면 되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인다. 남자는 이곳에 투자한 돈을 합치면 압력밥솥은커녕 집 한 채는 샀겠다고 빈정댄다. 기분이 상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식기건조기를 챙긴 후 나가 버린다.
돈을 내고 가려하는데, 카운터에 작은 수조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안에는 작고 동그란 것이 들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북이였다. 주인이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란다. 거북이는 낮은 돌 위에 납작 엎드려 눈을 깜빡거렸다. 낚시잡지에서 봤던 거북이 눈이 떠올랐다. 거북이 등 껍데기를 만져봤다. 물기가 말라 건조했다. 거북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물속으로 들어갔다.
집 근처 수족관에 들러 애완용 거북이를 샀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거북이 눈이 계속 잊히질 않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양한 크기의 거북이들이 있었다. 손바닥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거북이는 앙증맞았다. 등 껍데기에 육각형 귀갑(龜甲)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진 청색 거북이였다. 손가락을 얼굴 앞으로 갖다 대면 고개를 길게 빼는 모습이 신기했다. 놀리면 손가락 한 마디는 잘려나갈 수 있다며, 옆에서 지켜보던 가게 주인이 한마디 한다. 잡지에서 봤던 바다거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지만, 등 껍데기만은 단단해 보였다.
주인은 거북이 등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면서, 귀갑무늬는 벌집 모양의 나이테와 같아서, 이걸 보면 거북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 모양으로 암수의 구별이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살갗과 뼈가 바뀌어 딱딱한 딱지가 돼버린 등 껍데기. 어쩌면 내 앙상한 뼈들도 더 단단해져, 살 위에 육각형 무늬가 새겨질지도 모르겠다.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등 껍데기가 큰 거북이는 아래턱이 뾰족했다.
"거북이는 턱으로 음식을 씹어 먹어요."
이빨이 없는 거북이는, 어릴 때는 음식을 잘 못 먹지만 자랄수록 턱이 뾰족해져 닥치는 대로 삼킨다고 했다. 주인은 거북이 턱뼈에 찔려 피가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자라는 한번 물면 다시 놓아주지만, 거북이는 끈질기게 붙잡고 있다고. 나는 작은 거북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거북이를 놓아둘 만한 공간을 찾았다. 상자며 책들이 쌓여 있는 방 가운데 수조를 놓을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생각 끝에, 화장실에 놓기로 했다. 물과 가까운 곳이니 거북이도 좋아할 것 같았다.
수조에 물을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부었다. 먹이를 여러 알 넣었다. 먹이는 초록색의 작은 알갱이였다. 거북이는 물속을 헤엄치다가 수면에 떠 있는 먹이를 잽싸게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순식간이었다. 거북이의 양 볼은 부풀어 올랐다. 얇은 피부가 늘어져 핏줄이 더 붉어졌다. 위로 치켜 올라간 두 눈은 매서웠다.
갑자기 알람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 시계를 보니 내가 맞춰 놓은 시간이 아니었다. 버튼을 누르고 알람용 침을 옮겨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 다시 시도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시계를 던져두고 텔레비전을 켰다. 냉장고가 고장 난 후 텔레비전을 더욱 자주 보기 시작했다. 늘 귀에서 울리던 냉장고 소리가 없어지고 나니 적막을 참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설치한 케이블 방송 덕분에 텔레비전은 24시간 계속해서 소리를 냈다. 다양한 채널 중에서 나는 홈쇼핑을 즐겨본다. 화면 안에서는 진행자들이 계속해서 마감 시간을 재촉했다. 조금만 미적거리면 상품은 금방 다 팔리고 남아 있지 않았다. 특히 낚시도구를 팔 때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냉장고를 낚으려면 좋은 낚시도구가 기본이었다. 실내낚시터에 구비돼 있는 낚싯대가 좋은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화장실에 있을 거북이가 떠올랐다. 거북이가 변기 속으로 빠지면 어쩌나.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손을 집어넣어 거북이를 잡아야 하나. 거북이는 입을 크게 벌려 내 손가락을 순식간에 깨물지는 않을까. 거북이에게 물린 집게손가락은 끝의 한 마디가 잘려나갈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거북이 입 속에서 손톱이 씹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거북이를 건져 올릴 만한 낚시도구도 마련해 두어야겠다.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으니 도서관 직원이었다. 연체된 도서를 빨리 반납해달라는 직원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나는 내일까지 반납한다고 하고는 끊어버렸다. 아직 다 읽지 않은 책들이 자신들을 펼쳐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보였다. 책의 남은 면들을 펼쳐본 후 반납할 생각이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자판을 두드린다. 자판에서 나는 소리가 리듬을 타고 방 안에 울려 퍼진다. 텔레비전 볼륨은 낮게 줄여놓았다. 한글 문서의 하얀 배경을 보며, 왜 글자들은 항상 검은색일까에 대해 생각한다. 검은 종이에 흰 글자를 쓴다면 어떨까. 검은 수면 위로 출렁이던 실내 낚시터의 빛들을 떠올린다. 41번 번호표를 달고 있던 물고기가 생각난다. 한쪽 눈이 망가져 있던. 검은 눈동자가 깨져 투명한 비닐처럼 너덜거리던 물고기. 어쩌면 그 번호가 냉장고를 가져다주는 행운의 번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이 미지근했다. 다 마시고 넣는데, 냉장고 안에 둔 택배상자가 눈에 띄었다. 겉에 붙어 있는 발신인, 수신인 용지에는 운송장번호와 함께 이벤트 광고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운송장번호를 입력하면 추첨으로 상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문화상품권, 포인트 적립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진행 중이었다.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피자 무료 쿠폰에 구미가 당겼다. 몸은 눈에 띄게 더욱 말라갔다. 손목이나 무릎, 골반 등 관절이 있는 부분은 뼈를 그대로 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 살도 빠져 턱뼈가 예전보다 튀어나온 듯했다. 등살은 척추와 달라붙어 뼈마디가 만져졌다. 재빨리 운송장번호를 입력했다. 피자가 눈앞에 있다면, 한 판 모두 그 자리에서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그렇지. 다음 기회를 기약하라는 문구가 나왔다.
리듬을 느끼며 자판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모니터 화면이 꺼졌다. 하얗던 배경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컴퓨터 모니터뿐만이 아니었다. 계속 켜 두었던 텔레비전도, 천장의 형광등도 꺼졌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정전이었다. 핸드폰을 찾았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아슬아슬했다. 갑자기 알람시계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시계를 어디에 놔두었더라. 핸드폰이 발하는 미약한 불빛을 따라 더듬거리며 시계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는 내 몸을 사슬로 꽁꽁 싸매는 것 같았다. 시계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버튼을 누른 후 건전지를 빼버렸다.
현관문 앞으로 갔다. 약간의 움직임만 감지하면 곧잘 켜지던 센서등도 이번에는 묵묵부답이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창밖을 보니 평소 밤이면 테트리스 블록처럼 불이 켜 있던 아파트들도 모두 깜깜했다. 한밤중 불을 밝히던 공원의 가로등도 꺼져 있었다. 저 멀리 번화가의 간판들 불빛만 요란하게 빛났다. 온 동네 전체가 정전으로 까마득하게 어두워진 장면에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고요였다. 정전은 소리마저도 함께 꺼버렸다.
요의가 느껴졌다. 불 꺼진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북이가 수조를 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거북이의 긴 손톱이 플라스틱 수조를 긁는 소리였다. 오줌을 다 싸고 핸드폰 불빛을 거북이에게 비췄다. 거북이는 움츠린 채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손등을 거북이 등 껍데기에 문질렀다. 움츠리고 있는 거북이가 언제라도 목을 빼내어 내 손을 삼킬 것만 같았다.
날이 추워 목폴라 티셔츠를 골라 입었다. 목을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집 밖으로 나서면서 연체된 책들을 챙겼다. 더 놓아둬봤자 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책 반납함 두 개가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실내낚시터에 가면서 지하철역에 잠깐 들렀다. 두 곳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따로 반납함에 넣었다. 반납함 안에는 여러 권의 책들이 이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책 한 권 비집고 들어갈 공간도 없어 보였다. 시간을 한가득 입에 물고 있는 반납함에 꾸역꾸역 책을 집어넣었다.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반납함의 입 언저리에 삐죽 튀어나왔다. 나는 그것을 힘껏 밀어 넣었다.
실내낚시터 입구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늘 두근거린다. 한 발짝씩 내려갈 때마다 저 아래에서 누군가가 낚싯줄로 내 발을 잡아당기는 기분이다. 제발 오늘이 냉장고 타는 날이기를. 나는 41번 물고기를 생각하며 발을 디딘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았다. 물속을 유심히 지켜본다. 한쪽 눈이 투명한 물고기를 한눈에 찾기는 쉽지 않다. 서로 부딪치며 비켜가는 물고기들 틈에 41번이 보인다.
"물고기도 소리 듣는 거 알아요?"
옆 사람이 말을 걸어온? 지난번에 봤던 남자다. 집에 가져간 식기건조기는 잘 쓰고 있을까.
"비밀인데, 형씨한테만 알려주는 거요."
그래서 낚시꾼들은 살아 있는 것을 미끼로 사용한다고. 미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물고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그럼, 거북이는요?"
집에 있을 거북이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 순간, 41번 물고기가 내 낚싯줄을 살짝 비켜 지나갔다. 나는 낚싯대를 살짝 흔들어보고, 또 물고기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를 냈다. 낚시터에 그 소리가 울려 퍼졌는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들이 내 몸을 훑는 것 같아 소리 내는 것을 멈추었다. 목을 움츠려 목폴라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었다.
관리사무소에서 내보내는 중앙방송이 잡음과 함께 들려왔다. 어젯밤 정전은 아파트단지의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겨울 난방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기를 아파트 내부로 전달해주는 전환기에 문제가 생겨, 전기 공급이 중단됐던 것이란다.
타이핑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어제까지 작성했던 문서들이 저장이 안 된 건 아닐까 염려되었다. 다행히 한글 문서는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마우스로 인터넷 접속 아이콘을 눌렀다. 몇 번 더 눌렀지만 접속되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난감했다. 바로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가 시키는 대로 무선랜을 만졌다. 전화 통화만으로는 고치기 힘들다며, 내일 기사가 집으로 방문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한다.
먹이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불을 켜고 거북이를 찾았다. 그런데 수조 안에 있을 거북이가 보이지 않았다. 물을 너무 높이 담갔는지 거북이가 수조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선가 허우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변기 안에서 났다. 거북이가 변기 안에 빠져 있었다. 거북이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는 새 박스를 열어 낚시도구를 꺼냈다. 낚싯줄 끝에 거북이 먹이를 매달으려 했지만 작은 알갱이는 묶이지 않았다. 참치 캔을 열고 고기를 낚싯줄 끝에 매달았다. 목소리를 내며 거북이를 유인했다. 거북이는 발버둥 치던 것을 잠시 멈추었다. 소리를 감지했는지 거북이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거북이의 시선은 내 눈에서 낚싯줄로 옮겨갔다. 천천히 바라보던 거북이는 크게 입을 벌려 참치 고기를 삼켰다. 사람들이 이 느낌 때문에 낚시를 하는구나. 낚싯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거북이 목은 점점 더 길어졌다.
물을 조금 버리고 화장실 밖으로 수조를 들고 나왔다. 거북이는 또 먹을 것을 찾는 듯 보였다. 어디에 두어야 거북이가 도망가지 않을까. 냉장고를 열었다. 여러 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수조가 놓일 공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 어두운 서랍장 안에 수조를 넣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택배기사인가. 최근에는 옷과 군것질거리를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주문한 적이 없었다. 인터폰을 확인하니 인터넷 설치기사라고 한다. 기사는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며 재촉했다. 거울을 봤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집에서는 반소매 옷을 입는 탓에 팔과 다리의 앙상한 뼈가 훤히 드러났다.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냉장고에서 상자들을 이것저것 꺼냈다. 어느새 손톱이 이만큼 자란 걸까. 뾰족한 손톱 덕분에 칼 없이도 상자에 붙여진 테이프를 금방 뜯어낼 수 있었다. 기사가 문을 세게 두드리며 재촉하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설치기사는 건장한 체격에 말투가 친절한 청년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가져온 가방을 열며 컴퓨터가 어디 있는지부터 물었다. 언제부터 인터넷 접속이 안 됐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지난 밤중에 일어났던 정전을 이야기했다. 기사는 노트북을 이리저리 옮겨보았다. 무선인터넷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통신망이 벽에 가로막혀 원만히 흐르지 않는다고. 그는 연결될 때까지 끈질기게 작업을 계속했다. 나는 그가 작업하는 동안 내 마른 몸을 보고 힐끔거리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이십 분 정도가 지나자 인터넷이 개통됐다.
기사는 목이 마르다며 내게 물을 달라고 했다. 나는 냉장고가 고장 나서 물이 시원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설치기사는 미지근한 물이라도 달라며, 매우 목이 마르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천천히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 손을 집어넣어 물병을 꺼내는데, 잘못하고 수북이 쌓여 있던 군것질거리들을 건드렸다. 그것들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동시에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거북이 수조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수조에 들어 있던 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 위로 거북이가 몸이 뒤집혀 등 껍데기를 바닥에 붙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거북이도 드세요?"
큰 비밀을 들킨 것 같아 어쩔 줄 몰랐다. 설치기사는 자신의 농담이 어색했는지, 물은 다음에 마시겠다며 짐을 꾸리고 나갔다. 남겨진 노트북을 봤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한글 문서파일을 열었다. 하얀색 배경 위에서 까만색 커서가 깜빡였다. 거북이 눈이 깜빡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터넷 창을 열고 타이핑한 문서를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운송장번호 경품행사 이벤트 사이트에 들어가 번호를 입력했다. 이번에도 선착순에 밀렸겠지. 확인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당첨됐다는 문구가 떴다. 피자를 배달시킬 수 있는 쿠폰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머뭇거리다 인터넷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주소를 입력했다. 아차, 빼먹은 한 마디를 적지 못해 주문 취소 후 다시 입력했다.
'피자는 소화전에 넣어주세요.'
전화가 왔다. 낯익은 번호였다. 받아보니 도서관이었다. 대출한 책이 아직 미납 상태라고 한다. 저는 분명 책을 반납함에 넣었는데요. 그럼 책은 어디로 갔을까요. 저도 모르죠. 답이 안 나오는 대화만 계속 오고갔다. 그럼 저희 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직원의 말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반납함 입구에 삐죽 튀어나와 있던 책이 떠올랐다. 중간에 빠져나간 걸까. 책은 어디로 간 걸까.
고장 난 알람시계가 울렸다. 마치 내가 책을 훔친 걸로 오해받는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느닷없이 울려대는 알람시계처럼 내 일상이 고장 난 것만 같았다. 내 생각도, 행동도, 삶도 계속해서 연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북이는 어두운 냉장고 안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먹이를 제때 주지 않아 미안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수조를 꺼냈다. 그런데 거북이가 이상했다. 먹이를 주면 순식간에 입에 넣었었는데. 이제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움직임도 더뎠다. 등 껍데기 안으로 잔뜩 움츠린 목을, 길게 빼지도 않았다. 수조 안의 물은 거북이 배설물로 오염되어 썩은 냄새가 났다. 거북이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점막으로 덮여 있었다. 거북이의 빨려 들어갈 것만 같던 동공은 탁했다. 피부는 변색되어 주황빛이 났다.
급히 인터넷으로 거북이 증세에 대해 알아봤다. 물을 제 때에 갈아주지 않아 눈병과 피부병이 든 것 같았다. 치료법은 더러운 물을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식염수를 물에 희석해서 환부에 발라주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수조 안을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식염수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군것질거리들도 함께 주문했다. 내 몸은 점점 더 말라가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내 어깨와 쇄골이 거북이 등 껍데기처럼 단단해 보였다. 거북이는 등 껍데기 안으로 움츠린 얼굴과 팔, 다리를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참치 캔을 따고 고기를 줬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단순히 병에 걸려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낚싯대가 놓인 자리마다 사람들이 꽉 찼다. 평일에는 오지 않던 손님들도 눈에 띄었다. 커플들은 컵라면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는 아들에게 낚싯대 쥐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주인이 있는 카운터를 봤다. 어쩐 일인지 거북이가 담겨 있던 수조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에게 거북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탕 끓여서 먹었어요. 거북이가 글쎄 자라처럼 보양식이라고 하데요."
보양식이라니 눈이 번쩍 뜨였다. 등 껍데기는 탕 속에서 말랑말랑해질까. 키우던 거북이를 잡아먹다니. 주인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에 있을 거북이의 탁한 눈빛이 생각났다.
내 옆에 앉은 남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 그는 내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낚싯대가 꼭 지팡이 같지 않아?"
"네?"
"내 아내가 앞을 못 보거든. 아내 한번 따라해 봤어. 오늘은 압력밥솥을 꼭 타가야 하는데……."
식기건조기는 남자의 집 부엌에 놓여 있겠지. 나는 어쩌면 남자의 아내가, 내가 타이핑한 책을 점자로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숨겨진 막막한 시간들을 손끝으로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저 남자의 아내라면, 내가 키우는 거북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그녀는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41번 물고기의 헤엄도 느려진 듯하다. 느려진 41번 물고기는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물고기들 속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투명한 한쪽 눈은 그대로다. 나는 조그맣게 목소리를 내면서 41번 물고기를 유인했다. 41번 물고기가 있는 쪽으로 낚싯대를 천천히 옮겼다. 물고기는 미끼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잠시 졸다가 깨보니 낚싯대가 손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낚싯대가 쥐어지지 않은 손이 허전했다. 놓친 낚싯대를 잡으려 의자에서 일어났다. 낚싯대 끝을 보니, 물고기가 내 미끼를 물고 있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목폴라 티셔츠 속으로 움츠렸던 목을 길게 뺐다. 낚싯대가 잘 끌리지 않는지 물고기는 꼬리를 크게 움직이며 버둥대고 있었다. 물고기 번호를 확인했다. 41번이었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입질이 왔어요. 놓친 낚싯대를 힘주어 잡았다. 옆에 있던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나를 쳐다봤다. 주인이 내게 다가왔다. 41번 물고기를 뜰채에 넣고는 번호표를 떼어냈다. 냉장고일 거라고 반복해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주인은 상품이 진열돼 있는 곳으로 가더니 압력밥솥 상자를 들고 나왔다. 옆에 있던 남자는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압력밥솥 말고 냉장고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냉장고에 해당하는 번호를 낚으셨어야죠."
내게 압력밥솥은 필요 없었다. 집에서 밥은 해먹지 않으니까. 진열대에 있는 소형 냉장고가 반짝거렸다. 내 두 팔로 들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것이라며 눈도장을 찍어왔는데. 거북이가, 밝아진 냉장고 안에서 좋아할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주인에게 내가 낚은 물고기를 달라고 했다. 주인은 한쪽 눈이 먼 물고기를 보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41번 물고기가 담긴 비닐을 들고 옆에 앉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압력밥솥은 두고 갈게요."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분실됐던 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시립도서관이 두 군데여서, 반납함에서 책들을 꺼내 배달하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것이란다. 직원에게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장실에서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담고 그곳에 41번 물고기를 넣었다. 낚시터에서는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여기 와서는 재빠르게 헤엄쳤다. 거북이 먹이를 들고 와 물고기에게 주었다. 물고기는 먹이를 먹더니 지느러미를 팔랑거렸다. 먹이는 물고기의 입을 지나 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비늘 안으로 감추고 있는 가시들에 이리저리 찔리며 분해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가시를 감추고 있는 물고기의 헤엄은 우아하다. 긴소매를 입고 밖을 나서는 내 걸음도 점점 우아하게 될 것이다.
택배기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택배는 소화전에 넣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리던 식염수와 군것질거리일 것이다. 복도로 나가 소화전 앞에 섰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에 손을 대는데, 소화전 글씨 옆에 조그맣게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육각형 무늬였다. 거북이의 귀갑무늬 같았다. 그동안에는 보지 못했던 그림이다. 누가 그려놓은 걸까.
소화전 문을 열었다. 이상했다. 무슨 일인지 그 안에 있어야 할 상자가 없었다. 대신 다 식은 피자 한 판이 들어 있었다. 피자를 주문했던 걸 깜빡했다. 상자 안의 피자는 식어서 딱딱했다. 오래된 피자를 보니 식욕이 느껴지기는커녕 구역질이 나왔다. 피자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소화전 문을 닫는데, 화재경보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벨을 잘못 누른 듯했다. 알람시계는 버튼이라도 누르면 되지만, 화재경보는 어떻게 해야 소리를 끌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리는 내 몸 주변을 에워쌌다. 마치 에어캡 포장지가 나를 꽁꽁 묶는 느낌이었다. 소리는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재빨리 집으로 들어갔다. 소리와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지 않고 욕조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사이렌 소리가 머릿속에서 커졌다 작아졌다. 머리도 함께 부풀었다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며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 꺼진 화장실에서 아무도 없는 척 가만히 있었다. 화재경보 소리는 어느새 멈춘 듯했다.
냉장고에서 수조를 꺼냈다. 거북이가 배설했는지 물이 금방 더러워졌다. 깨끗한 물로 갈아주어야 한다.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기다리고 있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관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부엌으로 가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단수인 건가. 별다른 공지는 없었다. 경비실로 인터폰을 연결했다. 자리를 비웠는지 경비원은 받지 않았다. 수조 안의 더러운 물을 깨끗한 물로 갈아줘야 하는데. 식염수가 들어 있을 택배상자도 없었다.
문자 번호를 확인하고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얼굴도 모르지만 왠지 익숙하고 편안했다. 혹시 경비실에 맡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사는 우리 집을 혼동할 일이 없다며 분명 소화전에 잘 넣어 두었다고 했다.
"소화전 문에 육각형 그림 그려져 있지 않아요?"
"네. 맞아요."
"혹시 몇 개 그려져 있었어요?"
"한 개요."
"맞는데. 그거 제가 그린 거거든요."
"그럼 도대체 그 상자가 어디로 갔을까요?"
"…… 누군가가 훔쳐간 게 아닐까요?"
수조를 통째로 꺼내 들고 나왔다. 밖에서는 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복도의 센서등이 켜진다. 열쇠로 현관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빨간색 숫자가 빛나야 할 액정이 깜깜하다. 초점 없는 검은 동공처럼 보인다. 센서등이 켜지는 걸 보니 정전은 아닌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만 고장 난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뒤돌아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다. 19층 계단을 내려갈 일이 까마득하다.
혹시나 해서 아래층 소화전 문을 봤다. 기사가 착각하고 상자를 다른 집 소화전에 넣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육각형 무늬가, 다른 집 소화전 문에도 그려져 있었다. 내려갈수록 육각형 무늬의 개수는 늘어났다. 택배기사가 자신만이 알아보기 편하도록 그려놓은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소화전 문을 열어 안을 살펴봤다. 큰 소리가 났다. 집 주인이 소리를 듣고 나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소화전에는 내가 찾는 상자가 없었다. 10층 정도 반복하다 보니 지쳐갔다. 내려갈수록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물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목이 마르다. 실내낚시터 냉장고 안에 있을 시원한 물이 간절하다.
계단을 계속 내려가는데, 소화전에 그려져 있던 육각형 무늬들이 한꺼번에 눈앞으로 몰려와 공중을 떠돌았다. 지쳐서 현기증이 나는 걸까. 그 무늬들은 거북이 눈처럼 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여러 개의 육각형 무늬들은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아졌다. 시선을 떼지 않고 쳐다봤다. 하나로 모아진 무늬는 갑자기 내 손등으로 빨려 들어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른쪽 손등이 부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피부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무언가가 내 살을 찢고 나오는 것 같다. 툭 튀어나온 뼈들이 살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등을 봤다. 깜짝 놀랐다. 뭔가가 내 손을 대신해 움직이고 있었다. 손은 거북이의 얼굴로, 팔은 등 껍데기로 변해 있었다. 수조를 들여다보니 그 안에 거북이가 없었다. 오른팔을 흔들었지만 감각이 없었다. 거북이는 입을 벌렸다. 꼭 내 얼굴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 등 껍데기로 변한 팔을 세게 벽에 부딪쳤다. 그럴수록 거북이는 점점 더 고개를 내밀었다.
계단에 앉았다. 5층이었다. 거북이 눈은 하얀 점막으로 덮여 있어 초점이 없었다. 눈 먼 41번 물고기 같았다. 거북이는 움츠리고 있던 팔과 다리를 뻗어 버둥거렸다. 내 몸도 함께 흔들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위에서 가느다란 줄이 내려왔다. 줄 끝에는 고리 모양의 날카로운 침이 붙어 있었다. 그 끝에는 거북이 밥이 달려 있었다. 가만히 있던 거북이는 눈을 한번 껌뻑이더니 고개를 아주 길게 내밀어 낚시 바늘을 삼켰다. 낚싯대는 점점 올라갔다. 누군가가 내 팔을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내 몸은 어느새 허공 위에 떠 있었다.
■ 당선소감
말 속으로 들어가는 게 두려워 침묵을 선택했다. 침묵 곁에 있던 글. 종이 위에 글을 가만히 올려놓곤 했다. 글은 흐트러지고 엉켰다. 서로 헤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글이 있어서.
작년 겨울, 네팔에 갔었다. 사원에서 사람들이 마니차를 손으로 돌리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효과가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문맹률이 높아 그런 믿음이 가능했다. 고요한 사람들의 눈. 그들의 간절함이 눈 속에서 빛났다. 나는 정말 간절할까. 마니차를 돌릴 때마다 계속되는 의심. 손바닥이 따가웠다. 하지만 곧 따가움에 매혹됐다. 손을 바짝 가져다 댔다.
자판을 누르며 글을 쓸 때마다 그때 느낌이 났다. 당선 통보를 받다니! 그 따가움을 믿어보기로 한다.
문학의 문을 열어주신 선생님. 동국대 문창과의 학과장이신 장영우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힘들 때마다 제 안의 풀밭을 꺼내보며 차분히 걸어가겠습니다.
서로의 꿈을 사랑하고 응원한 스포큰 워드(Spoken word)의 성미 언니, 연지, 금보, 동건, 은지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착한 06학번 동기들. 선후배들. 아름다웠던 K205에게,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영원한 독자 현미 언니와 속초, 실비아, 마음을 다해 기뻐해준 친구들. 두팔보다 네팔. 프리마켓 식구들. 감사합니다.
내 전부인 가족. 유앵심 엄마, 라정균 아빠, 은경 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부족한 글을 오랜 시간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제 글을 지면에 가지런히 놓아준 한국일보사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용기 내서 마음껏 따가워 하겠습니다.
라유경
■ 인터뷰
"지난해 엄마가 수술까지 받을 만큼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마침 휴학 중이어서 날마다 집에서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엄마가 언제쯤 건강을 회복하실지 기약 없는 시간을 견디다가 문득 '나처럼 힘들고 괴로운 사람이 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유경(24ㆍ동국대 문예창작과4)씨는 당선작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를 넘어 타인에게로 향한 연민은 그에게 외부와의 소통이 끊어진 채 골방에서 은둔하는 인물을 떠올리게 했고, 언젠가 미디어아트 작품에서 봤던 실내낚시터의 풍경이 여기에 덧보태졌다.
그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 주변부로 밀려난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동안 습작한 작품들의 주인공도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도 소외된 인물들에게 공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라씨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며 글 쓰는 재미를 터득했지만, 글로 상을 받아본 경험은 전혀 없는 평범한 소녀였다. "작가란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동경의 존재로 여겨온 터라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마냥 기뻤다"던 그는 그러나 재학 중에는 '형편없는 글이라도 매일 꾸준히 쓰자'는 각오로 성실히 문학수업에 임했다. 시, 희곡 창작도 좋았지만 소설을 택했다. "인물에 집중하면서 그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씨는 "졸업하면 백수인데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에 당선 통보를 받았다"며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며 소설가로서 첫발을 뗀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러 번에 걸쳐 학과 수업이나 창작모임에서 동료 선후배와 함께 좋은 작품을 쓰고자 고민했던 일을 즐겁게 회상했다. 어쩌면 창작의 고통과 희열을 홀로 다스려야 할 앞으로에 대한 무의식적인 걱정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러나 이런 다짐을 힘주어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은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요."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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