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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2010년 한국영화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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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2010년 한국영화 결산

입력
2010.12.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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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 영화를 결산해보니 전반적으로 관객 수와 시장 점유율은 떨어지고 관객 1,000만이 넘는 초특급 대작은 없는 상황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10개 중에 7개가 한국 영화라는 것이다. 600만 명을 동원한 <아저씨> 부터 <의형제> <이끼> <포화속으로> <하모니> <방자전> <부당거래> 까지 흥행 순서 상위에 오른 한국 영화 7편을 살펴 보면, <하모니> 를 빼면 모두 남성 관객이 선호하는 액션과 스릴러이다.

이들 스릴러 장르 속 남자 주인공들은 서로 물고 뜯고 도륙한다. 왜? 오직 살기 위해서다. 영화 속 한반도는 피폐한 영혼과 걸신 들린 악귀들이 들끓고,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거두어 버리는 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사내들은 자식과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스패너 망치 칼 심지어 개 뼈다귀를 써서라도 온갖 곳에서 출몰하는 악마와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벌인다. 남성 주인공이 행사하는 폭력의 강도는 극단적으로 무자비하고, 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은 부재했다.

그만큼 한국 영화에서 드러나는 '오늘'은 살풍경하다. 이들 영화는 이 땅의 사람들이 사적인 복수 감정과 공적인 대의를 혼동하고 있으며, 자본이 물신이 된 세상에서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공권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암리에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중견이든 신인이든 여배우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져 여배우들에게는 최악의 한 해라 할 수 있었다. 여성 관객들은 이제 남성 영화 속의 꽃미남 배우의 얼굴을 접견하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남자 배우들의 경우는 강동원과 원빈 두 배우의 활약으로 압축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세대 교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빈과 강동원 두 배우는 충무로 안팎에서 백치부터 사기꾼, 탈북자, 킬러 등 다양한 사내들의 군상을 소화하면서 육체의 전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감정이 담긴 그릇으로 꽃미남 연기가 어떤 것인지를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액션 하는 꽃미남, 액션하는 여전사는 이제 남성과 여성 관객 모두에게 어필하는 배우들의 필수품이기도 하다.

제작비 100억 이상의 블록버스터 급 영화들이 사라지면서,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우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 나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 , 다큐멘터리 부분에 <땡큐 마스터 김> 과 <울지마 톤즈> 같은 독립영화들은 영화의 만듦새와 제작비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한 2010년의 수작들이었다. 그리고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의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장훈 장철수가 자신만의 데뷔작으로 스승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이 혼돈의 연옥 위에 이창동 감독의 <시> 가 피어났다. 오직 미자만이 한 소녀의 스토리와 소녀의 이름을 궁금해 했고, 오직 그녀만이 한 소녀의 영혼을 내사화했다. 미자. 아름다운 여자. 그건 우리 시대에 죽어가는 아름다움이었고, 그래도 살아서 불러 보고 싶은 인간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2010년은 여성 평론가인 내게 그다지 재미있는 한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 땅에, 한국 영화에 진정 평화가 깃들까? 부디 2011년에는 풍요로운 사색과 깊은 마음 결이 만져지는 좋은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아듀 2010년. 한국 영화계의 부활의 신호는 2011년에도 계속된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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