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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적대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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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적대의 비용

입력
2010.12.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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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김대중(DJ)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았지만 김정일 체제의 행태에 대해서는 DJ에 비해 한층 까칠했다. 대북송금사건 특검을 받아들인 것도 그렇지만 공ㆍ사석에서 김정일 정권에 불만을 드러낸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에 두 번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건배 제의를 했다.

노 전 대통령 특유의 튀는 행동이었지만 김 위원장에게 공존과 교류협력 제의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한 제스처였다. 지금은 거의 휴지조각이 되었지만 10ㆍ4 선언의 주요 합의는 그 진정성 위에서 이뤄졌다.

북 주민을 통한 북한 정권 변화

노무현ㆍ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접근은 바로 이 대목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전임 두 정부는 김정일 체제를 분명하게 인정한 위에서 대북정책을 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인정 유보와 불인정 사이를 오가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에는 불인정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잡았다. 어제 외교통상부와 통일부의 새해 업무보고는 흡수통일 논란을 의식해 애써 완화된 표현을 쓰긴 했으나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체제 변환 추구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 군만 아니라 북한 정권을 적으로 공식 규정한 마당에 다른 길이 있기도 어렵다. 군사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유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통일부 새해 업무 계획에 언급된 '주민 우선 접근'은 북한 주민과 정권을 분리해 주민 지원에 역점을 둠으로써 북한 내부로부터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취지다.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고 대내외 북한인권단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강력한 압박책이다.

대북정책이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 붕괴를 목표로 하는 적대적 기조 위에 선 이상 북한정권을 상대로 대화와 협상은 의미가 없다. 이 대통령은 29일 외교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폐기를 이뤄내야 하며, 남북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하는 데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붕괴를 압박하는 정책과 상충한다. 6자회담은 북한의 체제 보장과 핵 폐기를 맞바꾼다는 게 핵심인데, 체제 보장의 진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얘기가 되지 않는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으로 대가를 주고받는다지만 최소한의 신뢰가 없으면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국제적 통일지지를 확보한다는 외교 목표도 얼마나 현실적일지 의심스럽다. 흡수통일의 내심이 이미 드러난 상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한국 정부가 술에 취하지 않았느냐고 비아냥댄 한 중국 관영언론의 논조는 저속하지만 흡수통일 추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의구심을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러시아의 그런 인식을 외교적 기교나 역량으로 넘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섣부르게 나섰다가 도리어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북한 쪽으로 밀착시켜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의 냉전시대 대결구도를 심화시킬 우려도 크다. 북한 정권의 변화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가질 때라야만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방안에 대한 중ㆍ러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신뢰기반 유지해야

북한이 쉽게 도발적 행태를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투 트랙, 즉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대북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기반이 없다면 투 트랙 전략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공허한 레토릭이 되고 만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로 그렇다. 더욱이 대화 제스처는 치장일 뿐이고, 북한 정권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의 내심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남북간 적대적 긴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그 적대의 대가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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