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이가 자주 심심하다 한다. 바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엄마랑 재잘거리고 뒹굴고 했는데 눈 깜짝하고 나면 또 심심하단다. 그뿐 아니다. 마냥 좋아서 집안이 떠나가라 깔깔거리다가 뭐 하나 수 틀리면 바로 땡강 모드로 확 바뀐다. 변덕도 그런 변덕이 없다. 같이 놀아주는 어른으로선 참 황당하고 어이없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으면 ‘저 녀석은 힘들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번번이 든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여기저기 오간다. 동작, 엄청 빠르다. 나더러 그렇게 움직이라면 얼마 안돼 나가떨어질 게다. 아이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는 것도 같다.
실제로 아이의 ‘생체시계’는 어른보다 빠르다. 단위시간당 맥박이나 호흡이 어른보다 많다. 대사율이 어른보다 높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 동안 어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소리다. 생체시계가 빨리 가는 아이들에겐 상대적으로 세상이 참 늦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게다. 한참 놀아주다 “엄마 좀 쉬자”하며 눕자마자 또 놀아달라는 우리 아이 눈에 엄마는 참 굼뜬 사람일지 모르겠다.
대사율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때문에 식사량도 활동량도 점점 적어진다. 생체시계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진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몸 밖 세상의 움직임은 점점 빠르게 느껴진다. 1년이 쏜살같다. 이틀 지나면 내 나이 만 서른다섯.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빨리 갔다. 지난해 이맘때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여러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생체시계 속도에 따라 차이 나는 건 생화학적 시간이다. 이와는 무관하게 일상 속에서 물리학적 시간은 항상 일정하게 흐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선 시간이 관측자의 움직임이나 중력에 따라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규칙을 따른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로 물리학적 시간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물리학적 시간이 실체가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아픈 날이나 출근할 때 유난히 떨어지기 싫어했던 날이면 하루가 유달리 길다. 그런 날엔 퇴근할 때도 버스가 평소보다 늦게 오는 것 같아 애가 탄다. 이런 시간은 생화학적, 물리학적 시간과 별도로 흐른다. 바로 심리학적 시간이다. 경험이나 시간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빨리 가기도 하고 늦게 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시간을 느낀다.
정현종 시인은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라 했다. 아이에게 다시 오지 않을 2010년의 마지막 이틀 동안 엄마 노릇 열심히 한번 해볼 생각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