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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로 시한부 삶 사는 고미연씨의 새해 희망/ "홀로 남을 딸 시집 갈때까진 버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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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로 시한부 삶 사는 고미연씨의 새해 희망/ "홀로 남을 딸 시집 갈때까진 버텨야죠"

입력
2010.12.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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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된 중고차가 늦은 밤 도로를 달린다. 삭풍에 휘둘려 '삐걱삐걱' 밭은 숨을 토했지만 달려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운전하던 고미연(이하 가명ㆍ54)씨의 가슴 부위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아침에 진통제 4알을 삼켰건만 종일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독하디 독한 5단계(최고가 7단계) 진통제도 고통을 줄여주지 못한다. 설상가상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 한복판에서 시동마저 꺼져버렸다.

100m도 걷기 힘든 고씨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가로등 불빛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가 잠시 후 조심스레 시동을 건다. 다행히 차가 '부르릉' 소리를 냈다. "워낙 오래된 차라, 저랑 비슷한 처지인 거죠."

7일 자정 고씨는 터미널에 차를 남겨두고 서울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온몸에 암이 전이돼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한 것도 벌써 4년째다. '다시 내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그가 상경할 때마다 홀로 속삭이는 바람이다.

27일 오후 경북 포항시의 한 복지센터에서 만난 고씨의 낯빛은 창백했다. 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푹 눌러쓴 모자와 잦은 기침을 막기 위한 흰 마스크가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2003년 3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2007년 암 재발로 뼈와 임파선으로의 전이, 2008년에는 부신암, 올해 초에는 폐암 판정을 받았다. 3~4개월 전부터는 폐에 물이 찬다. 남들 같으면 자신의 병에 절망도 하련만, 고씨는 그런 모습을 내비치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요즘 컨디션도 좋고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포항에서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가족이라곤 딸 수민(14)이뿐이다. "내 몸보다 소중한 딸"이라고 했다. 2000년 남편과 별거한 후 고씨는 딸을 홀로 키웠다. 7년 전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고씨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 말고 돈을 벌 사람도,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어요. 약을 먹으면서 아침에는 식당 설거지를, 밤에는 대리기사 일을 했죠."

고씨는 온 몸으로 암이 퍼진 2009년까지도 계속 일을 했다. "요양도 하지 않고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아요. 하지만 온 세상에 딸과 나 둘 밖에 없는 걸요." 그렇게 말하곤 결국 눈물을 떨궜다.

남편은 2005년 간암 판정을 받고 2년 후 세상을 등졌다. 슬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댁에서 고씨를 상대로 딸 수민이에 대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는 황당한 일마저 있었다. 남편이 가지고 있던 시가 2,500만원 짜리 토지를 수민이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남편 동생인 삼촌이 와서 200만원을 주더라고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냐며. 돈 욕심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수민이가 그날 참 많이 울던 게 가슴 아팠어요."

결국 수민이가 남편의 친자인 게 유전자 검사로 확인되면서 돈 450만원을 받는 것으로 소송은 일단락 됐지만 시댁과는 연락이 끊겼다. "딸이 가끔 저한테 물어요. 우리한테 친척이 있냐고. 아무 말을 해줄 수가 없었어요."

고씨가 두려운 건 제 몸을 갉아먹는 병마가 아니다. 자신이 떠나면 딸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 같아 고통스럽다. "지금도 밤이 되면 갑자기 의식이 흐려져서 구급차를 부를 때가 많아요. 올 초에는 여름을 못 넘길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그가 딸에게 바라는 건 보통의 엄마와 다를 바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보살펴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다행히 딸은 전교에서 1, 2등을 다퉜을 만큼 공부를 잘 한다. 현재는 새로 전학 온 학교에 적응 중이다.

모녀는 10월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병원비는커녕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정에 여행은 언감생심, 한 복지단체의 후원 덕분이었다. 딸과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불현듯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고씨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딸이 시집가는 것을 꼭 볼 겁니다. 수민이한테 네가 30세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항상 말하거든요. 지난 여름에 생명이 다할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버티고 있잖아요. 지금보다 건강해지길 바라는 새해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딸도 엄마의 마음을 잘 안다. 수민이는 얼마 전 포항시청에서 주최환 소원을 비는 공모전에 참가했다. 수민이가 그린 그림엔 엄마가 손자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그림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웃었다. 후원문의 1588-1940(어린이재단)

포항=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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