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이정록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를 얻어오너라
원추리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진물 위에 흙 한 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나무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 온 나뭇가지가 채찍이 되지 않도록
● 장작을 팰 땐 나이테 간격 넓은 남쪽을 찍으라 하지요. 편히 자라 무른 쪽을 공략해야 잘 쪼개진다는 말인데, 실력 없는 사람이 패 걸레쪽이 된 장작이 불 피우기엔 더 좋다고도 하지요. 장작은 한 개비도 아니고 두 개비도 아니고 세 개비는 되어야 불이 잘 붙지요. 한 개비 불은 주저함이 크고 두 개비 불은 서로 이끌려함이 세고 세 개비 불은 넘어야 조화롭게 타오르지요.
시를 놓고 애먼 장작 이야기나 하며 자꾸 딴전을 부리고 있네요. 가지 하나 꺾어다가 어쩌고 저쩌고 할 시가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평소에 슬프고 아름다운 시를 만나면 종종 시의 가지를 꺾기도 했었지만요, 시는 시인의 북쪽 마음임을 절감하며 된통 마음 아팠더랬습니다. 보세요, 상처 입힌 그림자를 그림자로 기워보라는 시인의 여린 마음을. 여릴 수 있는 치열함을.
또 한 해. 시간의 가지를 꺾으며 미안한 마음은 충분히 가졌었는지요. ‘밑동’의 과거와 ‘가지’의 미래에 누가 될 시간을 이웃에 남겨놓지는 않으셨는지요. 갈무리하라 눈 내리는 세밑이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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