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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33> 고정관념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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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33> 고정관념의 위협

입력
2010.12.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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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미래를 안심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도한 사교육의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경험하고도 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심리적 배경은 바로 이런 불안감이리라.

최근 10년 사이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교육의 핵심적인 성공 변수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미 삼척동자도 끄덕이는 고정관념이 됐다. 올해 수능에서 최고 득점자로 알려진 지방 소도시의 한 여학생 얘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서글프기만 하다. 분명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가 분명한데도 특이한 예외로 치부하는 현실을 보면 부모 경제력이라는 고정관념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육에서 가장 오래된 고정관념은 지능지수(IQ)에 대한 맹신이다. 또 하나의 고정관념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개인의 강인한 의지에 대한 지나친 찬양이다.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타고난 머리나 개인의 정신력은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보통 학생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항변이 들리는 듯하다. ‘둔재이면서 게으르기까지 한데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이미 진 게임에 들러리가 되기보다 그냥 포기하는 게 속이라도 덜 상하는 것 아니냐’고. 만약 우리 사회가 다소 머리가 나빠도, 의지가 약해도 공부를 즐길 수만 있다면 공부를 정말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하지만 자신의 지능지수나 의지보다 더 절망적인 것이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학부모 교육을 한 적이 있다. 타고난 머리나 의지, 그리고 좋은 사교육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공부에 대한 태도와 습관이라는 요지의 강연을 했는데 어떤 부모가 질문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혹시 대치동에서도 그렇게 강연을 하느냐는 의심이 섞인 질문이었다. 시골에 와서 강연을 하니까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진실이 아닌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고정관념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다는 점을 너무나 잘 보여준 에피소드였다. 지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고정관념에 의해 패배의식을 갖게 될 지방의 용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게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라는 고정관념은 잠재력의 발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미국의 수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고정관념은 인종 차별의식인데, 그런 차별의식을 자극한 상태에서 시험을 보면 열등감이 없는 백인을 제외한 흑인이나 다른 인종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자극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런 고정관념을 자극하지 않으면 별다른 차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현실은 부모의 경제력이 핵심적인 성공요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고정관념의 위협으로 인해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반대말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교육학에서는 거의 정설로 인정하는데, 교사의 학생들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만으로도 뚜렷한 학업능력 향상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교육은 잠재력 개발과 같은 의미이므로, 공부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두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집약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두뇌가 가진 잠재력은 대단하다고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거대한 가능성인 잠재력이 고정관념의 위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제발 부모만이라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특히나 성장과정에 있는 학생 입장에서 자신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모의 학력이나 경제력 또는 거주지역이나 다니는 학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자녀가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희망과 기회의 의미는 퇴색하고 경쟁과 낙오를 강요하는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바로 부모들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이미 패배자임을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우리 교육 문화와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잠재력이란 태어나면서 갖게 된 비자금 같은 것이리라. 최소한 부모만이라도 너에게는 어마어마한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자녀가 올바로 알고 써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자녀가 가진 막대한 비자금을 숨겨진 금고에서 꺼낼 수 있는 열쇠는 다름 아닌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존중에 있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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