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있다면 ‘존재감’이란 것이 아닐까. 뒤집어 본다면 그것은 ‘부재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과 강박증이다. 극단 물리의 ‘있ㆍ었ㆍ다’에서는 우리 시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중견 극작가 정복근씨의 시선이 상연시간 내내 극장의 공기를 낮게 가라앉힌다.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고 현대 한국 가정의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그의 언어들은 미늘처럼 객석을 낚아챈다.
무대 배경을 감싸고 있는 것은 10개의 문이다. 그 문들은 완강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사람의 출입을 거부하는, 소통 불능의 문이다. 인물들의 등ㆍ퇴장 통로라면 왼쪽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또 하나의 문이다. 사람들은 그리로 들어와서 식구가 사라졌으니 찾아달라고 신고를 하고, 그리로 사라진다. 그러나 실종 사건을 전담하는 닳아빠진 형사에게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유사 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실종에의 불길한 예감은 무대를 시종일관 장악한다. 65분의 상연시간 내내 무대 너머 어디에선가는 실종된 소녀의 기운 빠진 목소리가 애처롭게 비집고 나온다. “찾아줘” “엄마, 아빠” “배고파”라는 가냘픈 외침은 객석을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아붙인다. 때로 곧 숨이라도 넘어갈 듯 객석을 옥죈다. 소리의 끊김과 높낮이에 맞춰 조명이 온오프되면서 객석은 마치 자신이 그 실종 사건에 연루돼 있는 듯한 혼돈에 빠질 지경이다.
실낱이라도 잡고 싶은 신고자들은 가족의 치부까지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시스템(경찰)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고 진술서일 뿐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철저히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싹틀 여지가 아예 없다. 극도로 불안한 실종 신고자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넋을 놓은 듯한 연기는 무대를 압착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종 신드롬의 희생자다. 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일에 치인 그의 가정은 해체 일보 직전이다. 부인도 새벽에 나갔다 밤에 들어온다. 웅크리고 있던 불행은 “아이가 안 보인다”는 노모의 말 한마디로 졸지에 현실화한다. 울부짖음과 함께 파고드는 피아노의 강한 타격음은 이 시대 한국의 가정을 겨냥한다.
형사의 넋두리가 암울하게 떠돈다. “요새 들어 부쩍 늘어난 실종자의 대부분은 아이와 여자와 노인들이다. 새끼와 암컷,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종은 필연적으로 자연도태 되고 만다.” 크고 작은 영상을 다양하게 동원, 절망의 사회를 무대화한 연출가 서재형은 어둠의 한구석에서 객석을 지켜보고 있다. 내년 1월 2일까지, 게릴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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