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기록하는 의궤(儀軌)를 남겼다. 현존하는 의궤는 17세기 이후의 것만 해도 700종이 넘는다. 주로 혼인, 장례 등 왕실 행사를 기록한 의궤가 대부분이지만 그 중 32종은 중요한 건물을 신축하거나 수리하는 과정을 기록한 건축 관련 의궤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화성성역의궤’(1801)가 있다. 일종의 건축 관련 종합보고서인 셈이다. 이런 의궤들에는 ‘OO영건OO의궤’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많다. ‘영건(營建)’은 ‘건축’을 의미하는 조선시대 용어다.
조선시대 건축 관련 의궤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동녘 발행)가 8년여의 작업 끝에 선보였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김도경 강원대 건축학부 교수 등 고건축에 관심있는 건축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영건의궤연구회’의 성과물로, 현존하는 32종의 영건의궤 중 내용이 유사하거나 소략한 것을 제외한 26종을 분석했다.
영건의궤는 ‘창경궁수리소의궤’(1633)처럼 궁궐과 관련된 것, ‘종묘개수도감의궤’(1726)처럼 왕실의 사당을 다룬 것, ‘건원릉정자각중수도감의궤’(1764)처럼 정자각을 다룬 것, ‘화성성역의궤’처럼 축성 공사를 다룬 것으로 세분할 수 있다.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시설에 대한 그림이 삽입돼있고 공사과정에서 벌어진 제반 내용을 소상히 담고 있어 조선후기 건축사 연구에 필수적인 사료다.
기록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의 전통을 반영하듯 공사에 관한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다. 착공일 택일은 어떻게 했는지, 공사에 관한 의사 결정을 누가 했는지, 목재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돌은 어디서 어떤 경로로 운반했는지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가령 17세기에 궁궐을 지을 때는 지방의 승려장인을 자주 동원했는데 이들에게는 월 단위로 노임을 지급하다가 18세기 중엽부터 날짜 단위로 지급했음을 알 수 있고, 단청 안료 중 일부는 경상도 장기현 뇌성산 같은 특정 지역에서만 산출됐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고심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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