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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수직의 배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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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수직의 배반자

입력
2010.12.2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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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배반자

문동만

엘리베이터는 수직으로 운동하지만 동력은 회전체다

도르래가 쇠줄을 돌려 직선의 운동력을 만든다

미세한 힘들이 수직의 탄 듯 만 듯한 승차감을

탄생시킨다, 수직의 어머니는 곡선

맞물려 돌아가는 곡선의 아귀힘으로 수직이 산다

하여 방자해진 수직은 자주 모체(母體)를 은폐한다

편리함 아늑함 속도전 그 따위 밑에 숨어서

어떤 가증스런 수작이란 걸 숨기며 내달린다

이제 계단도 옵션인 양 걷는 시대

거기서부터 형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팽팽한 쇠줄들이 죽은 땅을 끌어올리다

끝내 버티지 못하고 버릴 때가 있을 것이다

곡선이 죽으면 후레자식이었던 직선들이

따라 죽게 될 것이다

아마 땅을 칠 땅도 없을 것이다

● 아파트 엘리베이터 통로를 수직의 골목길이라고 시를 쓴 적 있다. 그 시를 쓸 때 나는 바닷가에서 출발해, 아파트 숲이 들어서고 있는 김포평야를 지나, 도심 한복판으로 출근을 했다. 도심에 다가갈수록 길들은 곡선을 버리고 직선을 택했다. 휘는 새 소리 대신 직선의 자동차 소리가 높아졌다. 가끔 곡선의 자동차 소리를 만나기도 했는데 그것은 대부분_직선이 저지른_생명의 다급한 비명 앰뷸런스 소리였다.

세월이 흐르고 도심처럼 바닷가에도 직선 길이 생겨났다. 곡선의 산을 제왕절개해 꺼내 놓은 직선 길은 편하기는 했으나, 산이 자연스럽게 낳은 길처럼 사람들의 삶을 품지는 못했다. 그 길가에서,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겁에 질린 직선의 나무들이, 생명의 어머니인 둥근 태양과 달을 바라다보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무 속 곡선의 나이테가 유서처럼 출렁일 것 같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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