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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쪽방촌 힘든 겨울나기/ "방 아닌 냉장고서 자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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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쪽방촌 힘든 겨울나기/ "방 아닌 냉장고서 자는 기분"

입력
2010.12.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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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물이 들이쳐 난리를 쳤는데 이제는 벽 사이로 '칼바람' 불어치고… 없이 사는 게 죄야."

2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종합시장' 뒤편 가파른 골목 위의 쪽방촌.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강추위에 서정배(51)씨는 골목길에 나와 자신의 방 창문만 원망스레 노려보고 있었다. 벌겋게 녹이 슨 철사와 노끈으로 얼기설기 엮은 창틀이 위태롭게 벽에 매달려 있었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머리 속이 지끈거렸지만 서씨는 "방안에 있으면 사방에서 웃풍이 징그럽게 불어대서 차라리 햇볕이라도 쬘까 골목에 나왔다"고 했다.

서씨는 이곳 월셋방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다. 프레스공으로 일하다 절단 사고로 왼손가락을 잃은 뒤 방황하던 그는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노숙과 찜질방 생활을 반복했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의 소개로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에 현재 거처에서 머물기 시작한 것이 2005년. 노숙생활은 벗어났지만 내복까지 껴입어도 된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그는 요즘 같은 때에는 "냉장고에서 자는 기분"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이곳을 안식처로 삼았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하나 둘 떠난 뒤 '집도 절도 없는' 노숙인과 중국동포들이 밀려와 새로운 삶을 기약하고 있는 쪽방촌. 그래서인지 추운 날씨에도 난방 기미가 느껴지는 집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서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 겨우 방값 내면 10만원 남짓 남는데 5~6만원 가스난방비를 댈 수 있겠느냐"며 "이불이나 꽁꽁 두르고 잔다"고 말했다. 그나마 가끔 나오던 하루벌이 일감도 한파로 뚝 끊겼다고 했다.

중국동포 김은정(25ㆍ가명)씨는 꽝꽝 얼어붙은 창틀과 씨름하고 있었다. 창과 창틀 사이, 벽과 벽 사이에는 그가 애면글면 붙여놓은 청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김씨는 "하도 바람이 들이쳐 일단 테이프라도 붙여두면 나을까 싶어 아침부터 이 짓을 하고 있다"며 "옷을 세 겹 네 겹 입고 밤에 소주라도 한잔 걸쳐야 추위를 잊고 잠을 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 동네에는 월세도 감당 못해 한뎃잠을 자야 하는 이도 수두룩하다. 김숙자(55) 재한동포연합총회 회장은 "친척도 없는 무연고 중국동포들이 하루에도 30~40명씩 묵을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며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월급이 적어 월세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에게 잠자리라도 제공하기 위해 올 9월부터 협회에서 중국동포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보일러 시설이 없어 이곳에 머무르던 중국동포 24명은 인근 교회와 노숙인 쉼터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삭풍이 야속한 이들은 쪽방촌 주민만이 아니다. 주택 재개발 정비 작업 도중 재개발 사업이 틀어지며 부서진 집에 방치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철거민 20여가구도 힘겨운 겨울나기에 눈물짓고 있다. 24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 김영희(47)씨는 "얼마 전 봉사단체에서 연탄 300여장을 줘서 연탄은 매일 때고 있지만 겨우 천장 가려둔 합판이 하도 바람에 들썩거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8년 철거가 시작된 이후 약 300여가구가 흉흉해진 마을을 떠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에는 걷기조차 힘겨운 60~70대 노인 10여명도 이웃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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