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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전쟁을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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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전쟁을 기억하십니까

입력
2010.12.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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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김광석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일본 가수가 있었다. 모리야마 나오타로(森山直太郞). 작사ㆍ작곡한 곡을 직접 부르는 이 30대 중반 싱어송라이터의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 <사쿠라(벚꽃)> 다. 일본은 4월에 신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3월 벚꽃 필 무렵이 졸업 시즌이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서정적인 가사에다 모리야마 특유의 애절함 넘치는 가창력으로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일본의 숱한 사쿠라 노래 가운데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를 모았다.

60여년 전 비극 잊지 않는 일본

<사쿠라> 에 끌려 최근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곁들인 모리야마의 노래를 이것저것 듣다 <여름이 끝날 때> 라는 곡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파초 살랑이는 눈두렁길 어깨를 나란히 하고 꿈을 엮었다/ 흘러 가는 시간에 조각배를 띄우고/ 불타서 무너져 내린 여름날 사랑 노래 잊지 못할 사람은 물거품/ 하늘은 해질녘/ 어찌할 줄 모른 채 그치지 않는 빗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적 없는 역에서/ 기억은 사람 마음 속 상처 깊숙이 젖어 들어/ 안개 낀 들에는 여름 풀 무성하고/ 그 일이 있고 얼마나 헛된 시간들이 지나갔을까/ 시냇물 흐르듯이/ 누군가가 건네온 말을 다 모아도/ 누구나 잊어버리는 여름날은 돌아오지 않네'

여름날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감상적인 사랑노래로 들리지만 이 곡은 실은 반전가요다. 어느 해 콘서트 실황을 담은 유튜브의 동영상에서 모리야마는 이 곡을 부르기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의 자녀들이다. 우리 세대의 자녀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반전가요로 부르게 하자는 생각으로 만든 곡이다."

여기서 전쟁은 물론 일본이 한반도와 대만을 삼키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침략한 뒤 하와이까지 공격했던 아시아태평양전쟁을 말한다. 그 무모했고 폭력적이던 전쟁은 8월 한여름에 결국 끝을 봤지만 전장으로 불려나간 '당신'은 돌아오지 않고 상처로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전쟁이 끝나고 60년도 더 지났지만 일본은 아직도 그 불행한 역사를 비교적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 원폭이나 미군의 공습 피해처럼 자신들의 고통을 앞세우는 게 못마땅한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일본 사회는 세대가 바뀌어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전쟁을 다시 해선 안 된다는 데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손 볼 구석이 적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위를 넘어선 무력행사를 금지한 9조를 지키기 위해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남북 무모한 호전론 경계해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반도에 전례 없는 긴장이 감돈다. 남북 모두 여차하면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노려보고 있다. 화약고에 불이라도 지피려는 듯 일부 언론은 대북 강경대응을 부추긴다. 북한의 도발을 감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비극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남북은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왔다"면서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며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했다"고 자랑했던 게 불과 10년 전이다. 책임을 따지기 앞서 그 짧은 시간에 왜 이토록 남북관계가 험악해졌는지 2010년 세밑은 마냥 우울할 따름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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