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이무기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내용의 영화 ‘디워’로 화제를 모았던 심형래 감독이 이번엔 ‘영구’를 뉴욕 뒷골목으로 들여보냈다. 제목은 전설적 마피아 영화 ‘대부’를 연상케 하는 ‘라스트 갓파더’. 한국 코미디의 대표적인 바보 캐릭터 영구가 마피아 대부의 숨겨놓은 아들이라는 영화의 설정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라스트 갓파더’는 미국의 유명 배우 하비 케이틀이 대부 역으로 출연하고, 심형래 감독이 주연까지 겸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을 했고, 제작비가 15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았던 한국형 블록버스터 ‘해운대’의 제작비(130억원)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다.
29일 ‘라스트 갓파더’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심형래 감독은 “관객들이 정말 재미있게 봐주셔야 되는데, 심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국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은근히 자신감을 드러냈다.
_ 아무리 코미디라지만 ‘라스트 갓파더’의 설정은 너무 억지스럽지 않은가.
“외국 코미디는 더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다. 마피아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들어가 벌어지는 일을 보고 미국 사람들은 신선하게 생각한다. 속편은 서부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식의 아이디어를 줄 정도이다.”
_ 코미디는 만국 공통어인데 굳이 많은 돈을 들여가며 미국에서 촬영할 이유가 있었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옛말이 있지 않나. 국산 첫 자동차 포니도 이탈리아 사람이 디자인했다. 미국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려면 그쪽 배우를 써야 맞다. 아무리 맛있다 해도 외국인이 갓김치를 처음부터 먹겠는가?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쓰는 영화를 보면 우리도 좀 어색하다. 영어는 못 알아들어도 친숙하다. 일단 외국인들이 편하게 즐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_ 그래도 한국 영화시장에서 좀더 입지를 굳히고 해외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나만큼 한국에서 영화 많이 만든 사람이 또 어디 있는가. 80편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가? 남들이 비웃을 때 ‘디워’를 미국 시장에서 상영했으니 ‘라스트 갓파더’ 캐스팅도 가능했다. 언제까지 우리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만 명이 들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만 인정하는 게 아닌,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_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 ‘청와대가 밀어준다’는 등의 루머가 충무로에 돌기도 했는데.
“하하하. ‘디워’ 때부터 온갖 루머가 많이 돌았다. 영화 만드는 데 왜 청와대가 밀어주나? 우리나라 콘텐츠를 미국 시장에 가져가려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 과연 무얼 가져갈 것이냐가 문제인데 미국 영화시장의 40%가 코미디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우리 코미디 이해한다고 보는가? 이해 못 한다. 이번 영화는 그렇게 만든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무지 많이 웃는다. 영화 보시면 아실 거다. 청와대가 밀어주면 어떻게 밀어주나? 내 일을 자꾸 시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봐야 아무 소용 없다.”
심 감독은 ‘디워’가 개봉했을 때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많은 영화평론가들은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뭇매를 가했고, 반면 적지않은 네티즌들은 “코미디언 출신이란 이유로 심 감독의 성취를 제대로 몰라준다”며 그를 옹호했다. 인터넷에서 공방이 거세지자 한 지상파방송 토론 프로그램은 ‘디워’를 주제로 다루기까지 했다.
_ ‘디워’ 상영 당시의 논란을 지금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재봉씨 빼놓고선 영화평론가 분들이 다들 좋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안 좋은 영화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좋은 영화는 못 나가는 건가? 세계 사람들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이야기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래서 얼마 벌었냐’고 따지시는데, 만원 한 장 보태준 적 없으면서 그런다. ‘디워’가 미국 나갔기에 굉장히 많은 걸 배웠다. 현대차도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는가. 예전엔 삼성전자 가전제품이 미국 백화점 저 구석에 있었다. 지금은 세계적 기업들이 됐지 않은가. 내가 먼저 진출하면 다른 감독들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욕을 얻어먹으면서 물꼬를 터가고 있는 것이다.”
_ 까칠한 평론가들은 ‘영화가 무슨 자동차인 줄 아느냐’고 되물을 듯한데.
“따지고 보면 가전제품도 자동차도 예술이다. ‘자기들은 뭘 알아서 날 평론하는데’ 이렇게 나도 반발할 수 있다. 내가 평생 코미디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뭘 알아서 내 코미디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삐딱하게 보면 어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을 해도 옳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꾸 딴죽 걸면 사람들 반발만 살 뿐이다.”
_ 코미디언에 대한 편견도 작용하고 있다고 珝▤求째?
“맞다. 그래도 억울하진 않다. 생각은 자유니까. 내가 ‘우뢰매’ 만들 땐 피아노선이 다 보이고 해도 어린이들이 용서해줬다. 그동안 노력해 기술력을 쌓았고 세계 시장에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난 실패를 할지라도 로켓 한번 쏴보려고 하는 거다. 또 ‘그럼 영화가 로켓이냐’라고 따지면 할 수 없지만. 영화를 완성해서 세계시장에 내놓는 과정은 인생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_ 꼭 성공해서 평론가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 법한데?
“그런 생각 안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다. 나도 해외에서 상도 받고 싶고 미국에서 ‘아바타’를 이기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아바타’를 이기고 해외에서 상을 받으려면 그 전에 뭔가를 실행하는 영화가 있어야 한다.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성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_ 영화인으로 불리고 싶은가, 아니면 코미디언으로 불리고 싶은가.
“아이고. 영화인이고 코미디언이고 구분이 어디 있는가. 사실 나는 뼛속까지 코미디언이고 또 영화를 사랑하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이경규, 서세원씨도 영화를 만든다. 꼭 누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분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구분하려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
심 감독은 “‘디워2’ 제작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제작비를 묻자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바타’ 개봉 3년 전에 이미 3D영상 기술을 다 만들어놓았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3D 애니메이션 ‘추억의 붕어빵’ 제작도 진행 중이다. 그는 또 “심형래코미디프로덕션을 만들어 조만간 방송 코미디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_ 미국 시장 진출을 사명처럼 생각하는 듯한데 영화계에선 집요하다는 평까지 나온다.
“사명보다는 욕심이 있는 듯하다. 우리도 ‘미스터 빈’ 같은 영화 한번 해봐야 한다. 바람만 가지면 뭐하는가, 실천을 해야지. 내가 코미디를 20년 넘게 했는데 코미디 할 때는 집요하다고 말 않더니 영화 만드니까 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 오래한 분에게 집요하다고 하면 좋겠나?”(웃음)
_ 결국 이번 영화는 영구만 우려먹는 내용일 거라는 시선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영구를 신선하게 보고 있다. 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상 받고 그럴 영화는 아니다. 온 가족이 팝콘 먹으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코미디영화가 전 세계 사람 기준으로 만들어야 하니 힘들다. 스릴러 같이 자극적인 영화만 보다가 이번 영화 보면 재미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남녀노소가 함께 보는 것 자체로 의미있는 영화다. 내가 뭘 기획해서 만들면 이상한 잣대를 대서 비난들을 한다. 내가 ‘영구와 땡칠이’로 돈 벌었을 때도 애들 코 묻은 돈 챙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 영화는 평론가를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고 대중을 위해 만든 영화다. 평론가들 평은 참고만 하려 한다.”
_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앉아서 할리우드 할리우드 하지만 그 곳은 정말 무서운 데다. 진출이 결코 쉽지 않다.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워리어스 웨이’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겠는가. 그런데 꼭 얼마를 벌었냐만 따진다. 아니 이제 막 나온 애가 ‘아바타’를 이기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거기 영화 역사가 얼마인가. 내가 일곱 살 때 성당에서 ‘십계’ 볼 때 어린 나이에도 뒤로 자빠졌는데. 그런 막대한 자본과 어마어마한 기술력과 부딪혀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 하나하나 도전해 갈 테니 지켜봐 달라.”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약력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1982년 KBS 제1회 개그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으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 등에서 영구 등을 연기하며 1980년대 최고 인기 개그맨으로 활약했다. 영화 '우뢰매'(1986)에 출연해 인기를 모았고, '영구와 땡칠이'(1989)로 흥행에 성공했다.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로 감독으로 데뷔, 이듬해 세계를 석권하겠다는 목표로 영화제작사 영구아트무비를 설립했다. 1999년 정부에 의해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됐다. '2001 용가리'(2001)를 국내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통해 미국에 배급했으며, '디워'(2007)로 840만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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