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1&그들의 시간’전은 한 작가의 작품에 담긴 시간성, 그 변화의 과정을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문을 연 지 21년이 된 이 미술관을 거쳐간 중견 작가 21명의 회화, 사진, 조각, 설치 등을 모았는데, 신작과 구작을 나란히 놓거나 작업의 출발점이 된 재료나 드로잉을 완성작과 함께 전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핀다.
‘맨드라미 화가’ 김지원씨는 10년에 걸친 맨드라미 작업을 총정리했다. 직접 키운 맨드라미 생화를 말려 만든 오브제부터 맨드라미 한 송이를 그린 드로잉, 맨드라미의 형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대형 회화까지 그의 작업 과정이 한 공간에 압축돼있다. 사진을 재료로 작업하는 조각가 고명근씨는 콜로세움처럼 쌓아올린 나무 조각 위에 사진 이미지를 입힌 20년 전 작품과, 투명 필름에 인화한 사진으로 입체물을 만든 전혀 다른 느낌의 최근 작품을 나란히 세웠다.
한국화가 유근택씨의 경우 대형 자화상과 함께 자신의 작업의 근간이 됐던 목판화 작품들을 걸었다. 자신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한 목판화 작업은 유씨가 한국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던 1990년대 집중적으로 시도했던 것이다. 문봉선씨는 대형 풍경화와 10년 넘게 지속해온 전각 작업들을, 조환씨는 매일 아침 일기처럼 그려온 붓글씨 드로잉과 거기에서 비롯된 철제 조각을 함께 걸었다.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조각가 정현씨는 대형 작업의 원형이 된 드로잉과 철수세미로 만든 오브제들뿐 아니라 자신의 대표적 재료인 철도용 침목과 돌, 콘크리트 등을 전시장 한가운데에 늘어놓았다. 노란 분필로 선을 내려 그은 먹지들로 벽면을 가득 채운 김호득씨의 설치작품은 1990년대 그의 수평선 드로잉 작업과 대조를 이룬다.
캔버스를 기울여가며 색을 입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화가 홍수연씨는 우연성에 기댄 초기작과 철저한 계산에 따라 완성한 근작을 통해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다. 공성훈씨의 작품들은 회화, 영상, 사진 등 각기 다른 장르와 20년에 가까운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풍자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내년 2월 6일까지. (02)720-5114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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